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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2025년 8월 18일
게시물 (72)
2025년 11월 27일 ∙ 1 분
No suffering, no crown
2025년 11월 27일 본문: 마 19:23-30 제목: No Suffering, No Crown 오늘 본문은 오해될 수 있는 말씀을 담고 있다. 대부분의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 헬라어 성경을 보니 "어떤 부자"(a rich man)는 천국에 어렵게(with difficulty) 들어갈 것이라는 것이 23절의 의미임을 알 수 있었다. 문맥에서 볼 때 부자이면서 권력까지 갖고 있었던 그 부자 청년이 근심하며 뒤돌아간 것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임을 알 수 있다. 그 어려움의 정도가 마치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울 정도라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는 대답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나님은 낙타도 바늘귀로 들어가게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의미일까? 물론 우주만물을 무에서 유로 창조하신 하나님은 원하시면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시다. 그러나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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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6일 ∙ 1 분
반면교사인 부자 청년 이야기
2025년 11월 26일 본문: 마 19:16-22 제목: 반면교사인 부자청년 이야기 오늘 본문은 마태, 마가, 누가 모두 기록한 본문이라는 점에서 중요성이 더하는 본문이다. 세 성경 기자 모두 본문에 등장하는 이 청년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만한 지명도가 있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누가는 이 청년이 "어떤 관리"(a certain ruler)였다고 기록했다. 젊은 나이에 유대 사회에서 매우 지위에 있는 정치가였고 부자라는 점에서 그가 누구였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만한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이 청년은 바리새인들이 시험하려고 던진 질문과 달리 자신이 평소에 씨름하던 진지한 질문을 가지고 예수님께 찾아올 정도로 성숙한 사람이었다. 마가는 그가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막 10:17)이라고 기록했는데 그의 태도에서 그의 겸손하고 진지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높은 지위에 있었던 그가 예수님께 그의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최대의 존경과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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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5일 ∙ 1 분
예수님이 안수해주신 어린 아이들
2025년 11월 25일 본문: 마 19:13-15 제목: 예수님이 안수해주신 어린 아이들 오늘 본문은 3절의 짧은 분량이지만 마태, 마가, 누가 모두 이 본문을 다루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마가는 제자들이 아이들을 꾸짖었을 때 예수님이 "노하셨다(he was indignant) "라는 표현을 추가했다. 그리고 "그 어린 아이들은 안고(he took the children to his arms)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라고 좀더 상세하게 기록했다. 누가는 이 아이들이 "어린 아기"(babies)라고 표현했다. 따라서 세 복음서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볼 때 예수님의 축복을 받도록 데려온 자들은 아마도 여성들이었을 것이고 유아기의 아이들이었을 것이다. 둘 다 당시 사회문화에서 사람의 숫자에도 포함시키지 않았을 만큼 무시된 부류에 속한 이들이었다. 제자들도 이런 사회적인 통념에 따라서 행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 제자만 이들을 꾸짖은 것이 아니라 복수의 제자들이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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