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있을진저 3
- kleecounseling
- 2025년 12월 16일
- 1분 분량
2025년 12월 16일
본문: 마 23:29-36
제목: 화 있을진저 3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실체를 가장 신랄하게 직면하셨다. 그들이 들었을 때는 욕설처럼 들렸을 말을 하셨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33절). 사실 그들의 가르침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해서 아담과 하와에게 유혹했던 뱀의 가르침과 같았다. 그들의 가르침과 삶을 따라가면 지옥으로 가는 판결을 받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33절 참조).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15절).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13절). 예수님은 그들을 구약에서 거짓 선지자들과 연결하셨다. 거짓 선지자들은 겉으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며 여호와 신앙을 유지하는 자들처럼 보였지만 속으로는 외식자들이었다. 우상종교들을 수입해서 섬기는 일에 앞장 섰고 종교혼합주의(syncretism)를 부르짖은 자들이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포스트모더니즘을 부르짖은 자들이었다. 절대적인 신앙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상대화 시킨 자들이었다. 포도주에 물을 탄 자들이었고 술의 찌끼와 같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왕과 제사장들과 관원들과 결탁해서 권력지향적인 현세주의자들이었다. 예수님이 25절에서 지적했듯이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한 자들이었다.
이사야 선지자들은 거짓선지자들의 모습과 그들의 가르침을 따라 살았던 유다 백성들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고발했다.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정의가 거기에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에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 네 은은 찌꺼기가 되었고 네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네 고관들은 패역하여 도둑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예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지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하지 아니하는도다"(사 1:21-23).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들 같이 점을 치며 이방인과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사 2:6).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역하여 그의 영광의 눈을 범하였음이라"(사 3:8). 이사야가 지적한 모습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모습이었다.
영적인 파숫꾼이 되어야 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오히려 맹인이 되어 자신들도 지옥으로 향하며 그들의 가르침을 받았던 백성들을 지옥으로 데려가는 거짓 선지자들의 후예인 것을 예수님은 밝히 드러내셨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였던 그들의 실체가 빛되신 예수님 앞에서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예수님은 정확한 진단(diagnosis)을 하셨다. 그들에게 필요한 처방책은 "화로다 나여(Woe to me) 망하게 되었도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라고 고백했던 이사야 선지자처럼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실체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이었다. 사실 별로 회개할 것이 없는 이사야 선지자가 이렇게 회개했다면 그들은 더더욱 회개해야 했다.
나 자신도 예외가 아니다. 성경 말씀을 읽을 때 성령의 조명(illumination)을 통하여 "화로다 나여"라는 탄식이 저절로 나와야 정상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장터에서 아이들이 피리를 불러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해도 슬퍼하지 않는 것과 같은 반응을 보일 때가 많다는 것은 나에게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잔과 대접의 겉만 깨끗하게 해서 사람들이 볼 때만 괜찮게 보이지만 속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 차 있다고 그들을 진단하신 예수님 앞에 설 때 나 또한 그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죽는 날까지 날마다 회개하여 안을 깨끗이 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뱀과 독사의 독이 나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퍼져 있어서 예수님의 피로 수혈을 받아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옛 자아의 모습이 남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날마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영적 전투를 계속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구약의 선지자들에게 거짓선지자들과 타락한 제사장들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왕들이 행했던 것처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과 그들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유대교 신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핍박할 것을 예언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teachers)을 보내매(I am sending you)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34-36절). 이 말씀처럼 사도행전에 기록된 것처럼 스데반 집사의 설교를 들은 자들이 그를 돌로 쳐서 죽인 것에서 시작해서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났다. 핍박하는 일에 앞장 섰던 대표적인 인물이 사울이었다. 그는 스데반을 죽일 때에도 앞장 섰고 대제사장의 공문을 받아서 다메섹에까지 가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을 잡아서 예루살렘으로 끌어오려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놀랍게도 이 핍박자 사울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쓰시는 귀한 그릇으로 변화시키셨다. 그도 결국 순교를 당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처럼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다 순교를 당했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러 매달려 죽임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기독교 2천년 역사는 순교의 역사이다. 한국의 기독교 역사도 순교의 역사로 이어져 왔다. 지금 한국교회는 순교의 각오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세계 곳곳에서 기독교 신앙을 지키기 위해 지금도 목숨을 걸고 신앙생활 하는 이들이 있다. 북한에도 있고 중국에도 엄청난 감시와 핍박 속에서도 예수님을 섬기는 자들이 있다. 평안하게 신앙생활 하고 있음을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언젠가 닥칠 수도 있는 핍박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견지할 수 있도록 기도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그들은 가인의 후예들이었다.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신 제사를 드렸던 아벨을 죽인 가인처럼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십자가에 죽여 피를 흘린 살인자들이 되었다. 빌라도에게 "그의 핏값을 우리에게 돌리소서"라고 외쳤던 유대인들은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주후 70년에 로마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과 성이 멸망을 당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대인들이 흩어졌다. 그리고 약 2천년 동안 나라 없이 방황하는 민족이 되는 핏값을 치뤄야 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섭리로 이스라엘 국가가 다시 형성이 되어 존립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며 믿지 않고 모세의 율법을 붙잡고 살아간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그 역할을 다했던 그림자와 같은 모세의 율법이 실체인양 붙잡고 살아가는 어리석음을 여전히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속에 그들도 회개하고 십자가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구원이 날이 올 것이다.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롬 11:25-2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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