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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있을진저 2

2025년 12월 15일 

본문: 마 23:13-36

제목: 화 있을진저 2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눈 먼 인도자"와 "어리석은 맹인들"이라고 호칭했다. "랍비"라는 호칭을 듣기 좋아했던 그들에게 이런 호칭은 매우 모욕적으로 들렸을 것이다. 율법을 가르쳤던 그들은 당시 백성들에게 "목회적 돌봄"을 제공하던 자들이었다. 그런데 양들을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guiding) 해야 했던 그들은 자신들이 영적으로 어리석고 눈이 먼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양들에게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도했던 것이다. 그들을 불필요한 규정들과 관습들을 만들어내어 백성들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어 하나님에 대한 참 신앙을 갖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이 에스겔을 통해 이스라엘의 병리적인 목자들을 묘사했던 모습과 닮은 목자들이었다.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Woe to you shepherds who only take care of yourselves!)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내 양 떼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 떼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겔 34:2-6). 


이 병리적인 목자들과 대조적으로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아흔 아홉 마리의 양들을 우리에 두고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을 때까지 찾으시는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신 분이셨다. 마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대조적인 예수님의 모습을 이미 마태복음 9장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35-36절). 자기만 먹이며 자기만 챙기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달리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5)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실제로 양들을 위하여 십자가 고난을 기꺼이 받으시고 죽으셨다. 죽으실 뿐 아니라 부활의 첫 열매로서 부활하셨다. 그래서 그를 따르는 모든 양들을 사망의 권세, 어둠의 나라에서 빛의 나라로 옮기시는 구세주가 되셨다.


영적으로 눈이 멀고 어리석었던 소위 "지혜자"들은 백성들을 잘못 가르치며 상담했던 자들이었다.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과 조언을 지적하셨다. "너희는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16절). 예수님은 그들의 잘못된 인도와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드러내셨다.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17절). 그들의 가르침은 주객전도(主客顚倒)라는 사자성어가 어울리는 가르침이었다. 나무 몇 그루만 보지 큰 숲을 보지 못하는 완벽주의적인 가르침이자 강박성 성격장애적인 미성숙함에서 나온 가르침이었다. 지엽적인 부분에 매여 매우 부분적으로 보고 가르쳤다는 점에서 그들은 "눈 먼" 인도자들이었다. 큰 그림을 보고 작은 그림을 봐야 제대로 해석하고 가르치기도 하며 살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은 식사 하기 전에 손이나 강박적으로 씻고 그릇이나 깨끗하게 씻는 것이 정결한 삶의 모습인 것처럼 가르쳤고 행동했던 어리석은 영적 맹인들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어리석음을 한번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 직면하셨다.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맹인들이어 어느 것이 크냐 그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18-19절). 예수님의 질문에 그들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예수님은 자문자답 하셨다.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20-21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연결짓기"와 "구별짓기"를 거꾸로 하고 있었던 어리석은 자들이었다. 연결해야 하는 것을 연결하지 못하고 구별했고,구별해야 할 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연결했던 자들이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착각하고 가르친 율법교사들이었다. 그들은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도 큰 낙타는 삼켜버리는 자들이었다(24절 참조). 즉 세부적인 것에는 지나칠 정도로 신경을 쓰면서도 정작 중요한 정신과 원리는 애써 무시하거나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무엇이 덜 중요한지를 구별하지 못하고 반대로 가르치는 인지왜곡이 일어난 어리석은 자들이었다.


지혜자 솔로몬은 잠언에서 A<B  형식의 잠언은 많이 사용했다. 등호(=)와 부등호(< or >)를 사용해서 가르쳤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면,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7:1). 기본적인 상식만 있어도 무엇이 더 낫고 무엇이 더 크고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를 구별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학식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 맹인이 되어 자명한 사실을 분별하지 못하고 가르쳤던 어리석은 교사들이자, 악한 교사들이었다. 


철학자들과 과학자들 그리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교수들도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그들이 가진 지엽적인 지식이 마치 전체를 아우르는 지식인 것처럼 잘못 알고 가르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이 직면하셨던 "눈 먼 인도자들"과 "어리석은 맹인들"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사실 어느 한 분야에 대해서 강박적일 정도로 세부적인 지식과 능력을 갖춘 자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설령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고 할지라도 큰 그림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정저지와(井底之蛙), 즉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이 우물의 테두리에 들어오는 하늘이 마치 세계의 전부인양 인식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눈이 관찰할 수 있는 현상학적인 세상은 매우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측량할 수 없이 광대한 우주 공간 안에서 우리가 아옹다옹하면서 살아가는 이 지구는 해변의 모래알보다 더 작은 실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겸손할 수 있다. 광활한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가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영적인 눈이 열릴 수 있다. 영적(spiritual)이라는 표현 자체가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는 것이다.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고 측정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 이 글을 쓰는 내 방 안에도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전파들이 오가고 있으며 중력이 작용하고 있다. 오늘 새벽에 쓴 이 글을 인터넷 공간에 올리는 순간 미국과 한국 사이의 지리적인 거리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1초도 걸리지 않아 한국에 있는 독자들이 이 글을 읽을 수 있게 인터넷망을 통해서 전달되고 변환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신비로울 따름이다. 인간이 개발한 것도 이렇게 신비하고 신기로운데 하물며 신기하고 신비로운 우주만물이 우연히 그냥 생긴 것이라고 믿는 것 자체가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다. 우연이라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 과학이라고 가르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음이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고 믿지 않는 자들은 사실상 큰 그림을 염두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 2:13-14). 피조물로서 자신의 작은 사이즈의 두뇌를 통해(아이큐 자체도 그렇게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이해하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인간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차이가 있고 크기가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겸손히 인정할 때 믿음이 싹트며 자랄 수 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이은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6-9).


바리새인들 중의 바리새인이라고 자부했고 당시 유대 사회에서 최고의 율법학자인 가말리엘의 제자였던 사울은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을 잡아 죽이는데 앞장 서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까이 갔을 때 정오 경에 해보다 더 밝은 빛 가운데 소리로 나타나신 부활의 주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그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다. 모세의 율법보다 크신 예수님의 말씀과 능력을 깨닫는 눈이 열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눈이 사흘동안 실명이 되었다가 아나니아가 안수하며 기도할 때 그의 시력이 회복되었다. 그는 신체의 시력만 회복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맹인"과 같았던 그가 영적인 눈이 열리는 은혜를 체험함으로써 기독교 역사에 가장 크게, 가장 귀하게 쓰임 받는 인물이 되었다. 그는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며 영적으로 맹인 상태에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게 하는 세상의 신들이 역사하고 있다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the god of this age, 마귀)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has blinded the minds of unbelievers)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3-4). 바울은 그의 시선을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보이지 않는 천국에 고정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목숨을 바칠 수 있었다. 바울의 다음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길 원한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We fix our eyes not on what is seen, but on what is unseen)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since what is is seen is temporary, but what is unseen is eternal)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we know that...)"(고후 4:18-5: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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