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있을진저 시리즈 1
- kleecounseling
- 2025년 12월 15일
- 1분 분량
2025년 12월 14일
본문: 마 23:13-36
제목: 화 있을진저 시리즈 1
마태는 13절부터 36절까지 많은 절을 할애해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구체적으로 직면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했다. 누가는 누가복음 11장에서 한 바리새인이 초대한 점심식사 자리에서 예수님이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기는 것에 대해서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39절)라고 직면하는 맥락에서 이어 "화있을진저 "를 다섯번 반복하며 구체적으로 그들의 상태를 직면하신 것으로 기록했다. 누가는 이 식사자리에 함께 초대받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반응까지 기록했다. "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45절).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54절). 흥미롭게도 마태는 23장에서 그들의 예상할 수 있는 반응을 기록하지 않았다. 기록하지 않아도 이 복음서를 읽는 자나 듣는 자들은 그들이 어떻게 반응했을 지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이어지는 동안 그들의 일그러진 표정이 그려질 정도로 강하게 직면하셨기 때문이다.
마태는 "화있을진저"(Woe to you)라는 표현을 일곱번 사용했다. 7은 완전수이다. 예수님은 외식하는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의 심각성을 그만큼 강하게 직면하신 것이다. 당시 누구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실상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직면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실제 그들의 실체를 알지 못해서 그랬을 것이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이며 겉으로는 양의 가죽을 입고 있어서 속에 이리가 있는 줄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며 "빛의 천사"처럼 자신을 위장하는데 능숙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종교적으로 의롭게 보이며, 깨끗하게 보이고 열심을 내는 자들로 보였다. 그러나 바울의 표현처럼 그들은 경건(piety)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이었다 (딤후 3:5). 그들은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23절 말씀처럼 십일조를 강박적일 만큼 정확하게 구별하여 드린 자들이었다. 십일조를 떼먹을 만큼 탐욕을 부리지는 않았기 때문에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라고 직면당할만큼 사람들에게 수치스러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들은 실제로 "잔과 대접의 겉을 깨끗이 하고"(25절) 식사전에는 반드시 강박적일 만큼 손을 깨끗이 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암송했고 율법을 어떻게 하면 더 정확하게 잘 지킬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자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서로서로 자신이 더 의롭다고 생각했고 상대적으로 자신이 더 의롭다고 마음으로 비교했다. 그리고 예수님을 책잡고 올무를 놓아 죽이려는데는 서로 마음을 같이 했지만 실상 속으로는 각자의 지위와 명예를 서로 더 차지하려고 하는 탐욕의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에 동의하는 교인 한 사람을 회심시키기 위해 열심을 내는 자들이었다. "너희는 교인 한 사람(a single convert)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15절)라고 직면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전도하는데 열심인 자들이었다. 그들의 선교 열심은 따라가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으로 눈먼 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외양을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까지 꿰뚫어 보신다. 예수님의 말씀은 마음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는 말씀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2-13). 사도요한이 계시록에서 환상으로 보았던 예수님의 모습 중의 하나는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는" 모습이었다(계 1:16).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은 백성들 앞에서 자신들의 치부를 그대로 노출시키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벌거벗김을 당하는 수치심으로 인해 분노했을 것이다. 늘 모세의 율법을 읽고 묵상했던 그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모세의 율법이 가리키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율법을 주신 분이며 율법의 요구를 완성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임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영적 맹인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내면의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한 맹인들이었다. 자신들의 가르침을 따르려는 회심자들을 만들기 위해 백방 노력했고 그들의 제자들이 자신들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격이 되어 웅덩이에 함께 빠져 멸망하는 자들이 되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을 "지옥 자식"이라고 직면했다. 13절에서 예수님은 그들이 천국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사람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고 직면하셨다. 천국문은 바로 예수님이셨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9).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양들을 구원하기 위하셔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천국문을 열어주신 분이다. 그런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그 선한 목자를 강도와 삯꾼으로 취급해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데 앞장 선 "절도와 강도"(요 10:1)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 사실을 몰랐다.
오늘날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같은 자들이 많이 있다. 예수님의 이름을 내걸지만 실상은 천국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천국문을 닫고 다른 사람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수많은 이단들이 주변에 있다. 겉으로는 예수님을 높이는 종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사람들을 개스라이팅해서 종교인으로 만들고 부모와 형제들과 단절시키고 돈과 재물을 다 자신들의 종교기관에 헌금하게 하는 이단교주들이 많이 있다. 이단이 아니더라도 기성 기독교회 안에도 이런 자들이 가라지처럼 섞여 있다.
더 나아가 나 자신 안에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가졌던 특성들을 조금씩은 갖고 있음을 인식하며 인정한다. 따라서 예수님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직면의 말씀은 당시의 그들에게만 하신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직면하고 계신 말씀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인식하고 자각하고 깨달아야 회개하며 돌이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사도요한을 통해 일곱교회에게 보내는 권면에서 그들의 수고와 장점들도 잘 아시고 칭찬했지만 그들이 각각 부족하며 회개해야 할 부분도 지적해주셨다. 특히 사데 교회의 모습이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의 모습과 닮았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계 3:1-3). 라오디게아 교회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닣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로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 3:15-16).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속으로 뜨끔 뜨끔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방어기제로 "부인"(denial)하며 "합리화"(rationalization)함으로써 그 수치와 고통을 오히려 분노로 느끼며 표현했을 것이다. 예수님이 자신들을 "모욕"(humiliation)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대하며 회개하는 자들은 천국 백성이 될 것이다. 그러나 본문 말씀을 대하고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지옥 자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말씀의 빛 앞에서 조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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