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원 주인과 두 아들 비유
- kleecounseling
- 2025년 12월 6일
- 1분 분량
2025년 12월 6일
본문: 마 21:28-32
제목: 포도원 주인과 두 아들 비유
20장에서 제자들에게 천국을 포도원 주인에 비유하신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또다른 포도원 비유로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동일한 사건이 기록된 마가복음과 종합해서 이해하면 네 부류의 사람들이 성전에서 예수님께 도전했음을 알 수 있다). 33절부터는 예수님이 그들의 핍박을 받아서 죽게 될 것을 암시하는 포도원 비유가 등장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다른 천국 비유들을 "숨기기" 위한 비유였다면 오늘 본문과 이어지는 포도원 비유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들었을 때 무슨 의미로 하신 비유인지를 알 수 있도록 "드러내신" 비유였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을 알고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마 21:45-46).
20장의 포도원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품꾼들을 사서 포도원에서 일하게 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포도원 주인은 자신의 두 아들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말한다. 좁은 의미에서, 첫째 아들은 세례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했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바리새인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세리와 창녀가 믿는 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다 (32절). 반면 둘째 아들은 요한의 도를 듣고 회개하고 "믿은" "세리들과 창녀들"을 의미한다. 첫째 아들은 "아버지 가겠다이다"라고 대답하고는 포도원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둘째 아들은 "싫소이다"라고 대답했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포도원에 가서 일했다.
예수님은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라고 자명한 질문을 던지셨고 대제사장들을 포함한 종교 지도자들은 "둘째 아들이니이다"라고 쉽게 대답했다. 이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직면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31절). 먼저 들어간다는 것은 그들이 나중에 들어간다는 의미보다는 들어갈 수 없다는 역설적인 의미이다.
20장의 포도원 비유와 연결한다면 세리들과 창녀들은 오후 5시경에 포도원에 들어가 일할 수 있도록 은혜를 입은 품꾼들과 같았다. 반면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제일 먼저 포도원에 들어간 자들과 같았다. 그들에게는 율법이 먼저 주어졌고 신앙생활도 먼저했고 처음된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누가 크냐"고 제자들이 논쟁했던 것처럼 자신이 제일 "큰 자"라고 자부하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잔치에서도 상석에 앉는 것을 좋아했고 그렇게 대우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나 그들은 성전을 정화하고 성전에서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말씀을 가르치신 예수님이 자신들을 포도원으로 불러 제사장으로 또는 서기관으로 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포도원의 주인이자 포도원 주인의 상속자 아들인 줄 알아보지 못했다.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마 21:38-39). 이 포도원의 비유에서 농부들은 아들인 줄 알고 잡아죽였지만 실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믿을 수 없었고 오히려 예수님이 신성모독죄를 범한 것이라고 여겨 십자가에 못박게 했다.
천국은 예수님을 믿고 뉘우치며 회개한 자들을 초대하는 나라이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그 나라에게 들어갈 수 없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이 구주(Savior)가 필요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의롭다 생각했다. 실상 그들은 사람들에게 겉으로만 의롭게 보였지 속은 불의가 가득한 자들이었다. 예수님의 지적처럼 그들은 거짓의 아비인 마귀에게 속한 자들이었다.
넓은 의미에서 첫째 아들은 유대인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율법을 받았고 할례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임을 확인받은 은혜를 입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포도원 주인인 하나님 아버지에게 순종할 것을 약속하고도 실상은 불순종하는 삶을 살았다. 율법이 가리키는 구세주 예수님이 자기 백성에게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오늘날까지도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초등교사의 역할을 했던 구약의 율법에 매여 예수님을 부인하는 삶을 살고 있다. 반면에 둘째 아들은 이방인들을 의미한다. 이방인들은 구약에서는 언약 밖에 있었던 세리들과 창녀들과 같은 존재들이었다. 유대인들이 "개"처럼 취급했던 대상들이었다.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첫째 아들에게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눅 15:30)인 자들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탕자인 둘째 아들이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눅 15:21)라고 말하기도 전에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는 용서를 먼저 베풀었다 (눅 15:20).
첫째 아들도 둘째 아들도 포도원 주인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첫째 아들은 "예스"라고 대답했지만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순종할 뜻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 아들은 "싫소이다"라고 거절하는 대답을 했지만 뉘우치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3)라고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을 지칭하는 줄 알고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했지만 백성들의 눈을 두려워해서 잠시 뒤로 물러났지만 결국 예수님을 며칠 후에 십자가에 못박는데 앞장섰다.
하나님의 뜻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바리새인들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회개하는데 있었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던 청년 사울을 부르셨고 사도 바울이 되게 하셨다. 유대인의 지도자이자 바리새인이었던 니고데모도 결국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셨다. 바울은 나중 된 자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나중이 되는 구속사 섭리의 비밀을 동족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신앙의 의미를 해석하면서 잘 드러내었다. "너희(이방인)가 전에는 하나님게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느니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롬 11:30-32). 먼저 복음을 믿는 은총을 누린 자들도 오늘 본문에 나오는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이 가졌던 태도를 갖고 있지 않은지 늘 점검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아야 죽는 날까지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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