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天使, angels)
- kleecounseling
- 11월 20일
- 1분 분량
2025년 11월 20일 새벽
본문: 마 18:10
제목: 천사(天使,angels)
오늘 본문 10절,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는 말씀은 6-9절에 붙여서 해석해도 무방하고 11-14절에 붙여서 해석해도 무리가 없는 연결고리 말씀이다. 성경은 천사의 활동에 대해서 언급을 많이 하지 않는다. 언급된 분량이 적기 때문에 신학교육에서도 천사론(論) 또는 마귀론이라는 과목으로는 가르치지 않는다. 아무튼 예수님은 오늘 본문 10절에서 천사의 일부 사역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다. 세상에서는 업신여김을 받을 수 있는 "작은 자들(little ones)"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을 돌보며 연결된 천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들이 "항상"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예수님의)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뵙는다고 말씀하셨다. 작은 자들조차 그들과 연결짓기가 된 천사들이 있다는 성경적인 사실은 성도들에게 큰 위로와 힘을 준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며 심지어 세상에서는 "업신"여김을 당하기도 하는 자들이라고 할지라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믿음을 가진 자는 누구나 예외없이 천사들이 그들의 처지와 상황을 잘 알고 항상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을 뵙고 보고하고 돕기도 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악한 왕 아합의 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 엘리야는 이세벨의 위협하는 말을 듣고 사역하던 북이스라엘에서 남유다의 가장 남단 지역 브엘세바까지 도망가서 자기의 사환마저 남겨두고 혼자 광야에 들어가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나이다"(열상 19:4)라고 기도하고 로뎀나무 아래 쓰러져 잤다. 그때 천사가 홀연이 나타나 그에게 물과 떡을 공급하며 그를 어루만지며 위로했다.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일어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열상 19:5).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열상 19:7). 그는 아무도 없고 아무도 모르는 자리에 홀로 쓰러져 자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의 처지를 잘 알고 계셨다. "나만 홀로 남았다"고 하소연하는 그에게 여호와의 천사가 나타나 마실 물과 먹을 떡을 공급하며 지친 그의 육신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는 사실은 지극히 작은 자에 해당하는 모든 성도들에게도 큰 위로와 용기를 준다. 엘리야만 특별하니까 천사가 나타나서 도와주시는 것은 아니다. 야고보의 말씀도 위로를 준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Elijah was a human being, even as we are)" (약 5:16-17).
신약시대에도 천사들이 있다. 몸을 입은 천사들(embodied angels)이다. 실제 천사는 아니지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천사들이 될 수 있다. 매일 기도하는 시간에 하나님을 만나면서 누군가를 위해서 아뢰며 기도하는 자로 쓰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내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라는 찬송가사 그대로이다. 기도할 수 없을 만큼 지치고 외로울 때에도 나와 당신을 위하여 기도하는 천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의식화(conscientization)할 필요가 있다.
천사는 영적 존재여서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요한계시록을 끝으로 특별계시가 종결된 이후로는 천사가 성도들의 눈에 보이게 나타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영의 눈으로는 각 성도는 자신과 연결된 천사가 자신을 돕고 천국에 이를 때까지 동행한다고 믿어도 된다. 천사들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들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numbering thousands upon thousands, and ten thousand times ten thousand) (계 5:11). 그 수많은 천사들이 감당하는 일이 있다. 그 일들 중의 하나는 각 성도에게 배정된 천사들이 항상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그 성도의 상황을 보고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어디에나 이미 와 계시고 임재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상황을 몰라서 천사들이 보고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씀해주신 것이다. 천사들과의 천상회의가 매일 있어서 우리의 상황과 기도가 매일 보고되며 논의되는 모습을 머리 속에 그리며 기도한다면 기도할 때 힘을 얻을 수 있다. 다른 성도들을 위해서 중보적인 기도를 할 때에도 자신이 또다른 천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중보적인 기도를 할 이유가 있고 지치지 않고 기도할 수 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들이 옥에 갇히는 상황에서 천사가 나타나 그들을 구출해준 사건이 등장한다.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부하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키는 사람들이 문에 서 있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행 5:18-23). 옥문이 잠겨져 있고 보초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명의 사도들이 옥을 빠져나간 초자연적인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시간이 흘러 사도행전 12장에는 헤롯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는 과정에서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인 후에 베드로도 잡아서 옥에 가두고 유월절이 지난 후에 끌어내어 백성들 앞에서 죽이려고 했던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5절이 그 상황을 설명한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놀랍게도 5장 사건과 데자뷰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헤롯이 베드로를 끌어내어 죽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천사가 나타나서 그를 옥에서 끌어내었다. 죽음을 앞두고도 깊은 잠을 자고 있던 베드로를 천사가 깨워 밖으로 인도했을 때 베드로는 꿈인지 생시인지 환상을 보는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가 정신이 들었을 때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행 12:11)라고 혼잣말을 했다. 초자연적인 기적이 또 일어난 것이다. 쇠사슬이 손에서 벗어지고 쇠문이 저절로 열리는 초자연적 역사가 일어났다. 중요한 사실은 이 기적 사건 뒤에 베드로를 위하여 모여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모여 기도하고 있는 바디-천사들이 있었던 것이다.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행 12:12). 아이러니한 것은 그들은 베드로가 풀려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지만 베드로의 음성을 듣고 기뻐서 문도 열지 못하고 뛰어 들어간 로데라는 여자 아이가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라고 말했을 때 그들은 "네가 미쳤구나"라고 대답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기도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기도가 현실로 나타날 것이라고는 거의 기대를 하지 못했음을 잘 말해준다. 비록 구출될 것이라는 믿음이 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신 주님은 그들이 모여 기도하는 것을 알고 계셨고 듣고 계셨고 그의 천사를 보내셔서 그 밤에 베드로를 기적적으로 구출하게 하셨던 것이다. 믿음이 부족한 기도도 들으신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요즘은 졸음운전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이전에 총신대에서 교수생활할 때에는 졸음운전을 자주 했다. 순간적으로 눈이 감겨서 교통사고가 날뻔 한 적이 수백번 있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내가 기면(旗面)증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였다. 마귀가 나를 죽이려고 졸음운전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튼 그 많은 위기 가운데서도 졸음운전으로 교통사고가 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졸다가도 무의식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내가 아닌 누군가가 브레이크를 밟게 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내 차 안에 천사가 같이 타고 있었던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한번은 경기도 용인에 있는 신학대학원에 강의하러 가는 아침 시간에 학교 진입하는 2차선 도로에서 순간적으로 깜박 졸았다. 눈을 떠보니 내 차의 사이드미러와 맞은 편에서 오는 차의 사이드미러가 서로 1밀리미터의 간격 정도도 안될 만큼 붙어 있었다. 지나치지도 않고 깨지지도 않고 스크래치도 없이 서로 살짝 맞물려 있었다. 상대방 운전자에게 사과를 하고 떠나오면서 내 몸에 전율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천사가 나를 지켜주었구나, 하나님께서 상대방 차에도 운전자에게도 상해를 입히지 않게 졸음 상황에서도 보호해주셨구나" 라는 확신이 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눈을 뜬 채 의도적으로라도 시속 3-40 킬로미터의 속도로 운전하다가 브레이크를 밟아서 각 차의 사이드미러를 서로 만나게 하면서도 깨어지거나 스크래치를 내지 않을 수 있는 확률은 천분의 일 정도 될까? 아니 거의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런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도 졸다가 섰는데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의식하지 않고 살 때가 대부분이지만 나의 출생부터 지금까지 나와 연결된 천사들이 음으로 양으로 돕고 있음을 믿는다. 나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졸음운전은 음주운전보다 더 위험하다는 말도 하는데 되돌아보면 자칫 다른 사람을 상해하며 죽일 수도 있는 중범죄자가 될 수도 있었는데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고 살아온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일전에도 언급한 바가 있지만 대학 4학년때 낙동강에서 수영하다가 기적적으로 구출된 사건도 오늘 천사 본문과 연결된다. 그때는 하나님이 나를 건지시기 위해 두 명의 천사들을 사용하셨다. 다른 여자 선생님들은 다 물을 길으러 가느라 자리를 비웠는데 뭍에서 한 명 남아 있던 교회 1년 후배 여선생과 수영하던 친구들 중에 그 여선생의 고함소리를 듣고 물에 빠진 나를 구해주었던 동기 남자 친구가 하나님이 사용하신 천사들이었다. 내가 물에 빠진 것을 그 여선생이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그 친구가 자신의 생명을 걸고 용기를 내지 못했더라면 이렇게 말씀을 묵상하고 글을 쓰는 오늘의 이 시간이 나에게 없었을 것이다.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에게도 천사들이 연결되어 있고 그들이 항상 하늘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현대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큰 위로와 힘을 준다. 주님은 거짓말하시는 분이 전혀 아니다. 예수님이 만약 거짓말하셨다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시다. 그분은 빛이시며 빛 가운데 거하시며 어둠과 거짓이 그에게는 조금도 없다.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아멘!"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갈 때 우리는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위하여 중보적인 기도를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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