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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진단의 중요성

2025년 11월 15일 새벽 

본문: 마 17:14-20

제목: 정확한 진단의 중요성


마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고치지 못했던 아이의 병이 아버지의 입을 통해 "간질"(발작, seizures)이었다고 기록했다. 마태는 귀신들려서 이 아이가 고통을 겪었다고 말하지 않고 그냥 발작으로 인해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라고 예수님께 아이의 아버지가 말한 것으로 기록했다.그런데 마가는 귀신이 아이를 괴롭혔다고 기록했다. 나는 오늘 마태복음 본문과 병행 본문인 마가복음의 본문을 중심으로 묵상해보려고 한다. 마가는 예수님이 이 아버지에게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라고 물으신 내용을 기록했다. 아버지의 대답을 통해서 이 아이는 어릴 적부터 귀신에게 고통을 심하게 겪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가는 그 아버지가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했다. 마가는 이 아이의 행동의 근본적인 원인이 귀신에게 있었음을 분명히 밝힌다. 아이가 치유되는 과정에서 "귀신이 소리를 질렀다"(The spirit shrieked)라고 마가는 기록했고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갔다"고 기록했다. 아이는 귀신에게 막무가내식으로 당하는 피해자였다. 예수님께서 치유하신 접근도 귀신을 꾸짖으시며 명하신 접근이었다.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막 9:25).


이 귀신의 정체는 모든 귀신이 그렇지만 "더러운"(impure) 귀신이었으며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You deaf and mute spirit)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못 듣는 귀신"이 예수님의 명령을 듣고 반응했다는 사실이다. 거라사 지역의 광인을 통제했던 군대 귀신의 경우에는 말도 하는 귀신이었다. 예수님의 정체를 드러내는 말도 하고 예수님과 타협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본문의 귀신은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귀신이었다. 그런데 이 귀신은 말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데 "볼 수" 있었다.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다"(막 9:20). 


이 증상은 오래 전부터 이 아이를 괴롭혔던 증상이었을 것이다. 심한 경련과 발작, 땅에 쓰러지고 데굴데굴 구르는 행동, 거품을 흘리는 증상 중에서 "구르는" 증상 외에는 간질의 전형적인 증상과 같다. 그래서 귀신이나 마귀의 존재를 부인하는 의사들은 이 아이의 증상이 현대의학적으로 볼 때 간질이었으며 귀신들림 때문이었다고 진단할 것이다. 의사들은 증상을 보고 진단하고 치료할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에 정신의학에서도 원인에 대한 관심을 별로 갖지 않는다 . 증상을 보고 진단명을 붙이고 분류하고 치료한다. 영적인 영역은 정신과 의사들의 경우에는 관심 밖의 영역이다. 


예수님은 나면서부터 맹인이 된 자의 눈도 뜨게 하셨으므로 이 아이의 병이 심각한 간질이었다고 해도 고치셨을 것이다. 그런데 본문의 이 아이의 경우는 간질과 매우 유사하지만 구별이 되는 증상이 있었고 치유되는 과정에서도 예수님이 귀신의 정체를 분명히 아시고 치유하셨다는 점에서 간질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갈릴리의 광풍과 물결을 향하여 "잠잠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성난 파도가 즉시 잠잠해지는 이적이 일어난 것처럼 이 사건에서도 예수님은 말씀으로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고 말씀으로 명하셨고 귀신을 바로 쫓겨나가는 반응을 보였다. 이 아이에게는 다른 귀신들린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과 달리 "다시 들어가지 말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이 말씀을 듣자마자 이 귀신은 기괴한 소리를 지르면서 나갔고 그 아이는 심한 경련 후에 마치 죽은 것처럼 되어 사람들이 "죽었다"라고 말할 정도처럼 되었다. 예수님은 이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고 그 아이는 일어났다(막 9:26 참조). 이 장면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의 손을 잡아 일으키신 장면과 오버랩된다.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 죽은 소녀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이 남자 아이는 거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더 이상 이 더럽고 말 못하며 듣지 못하는 귀신의 괴롭힘을 받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얼굴과 몸에는 남아 있는 화상 자국은 이 아이가 살아가는 동안 남아 있었겠지만 그의 유년시절부터 괴롭혔던 귀신들림으로 인한 발작과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졌을 때 아이와 아빠가(그리도 본문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엄마까지도)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아갔을 모습이 눈에 선히 그려진다.


예수님은 귀신의 정체를 정확하게 진단하시고 그를 꾸짖으셨다. 불에도 던져지고 물에도 넘어져서 죽을 뻔 한 적도 여러 번 있었을 증상이 언제부터 생겼는지에 대해 예수님이 아버지에게 질문하신 점도 흥미롭다. 귀신들림의 증상이 적어도 여러 해 동안 있었음을 아버지의 대답을 통해 드러내심으로써 이 아이와 이 아이의 아버지가 겪었을 고통의 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세 제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제자들이 귀신들린 이 아이를 치유하기 위해서 축사(逐邪,exorcism)를 번갈아 가며 아니면 합심해서 했을텐데 귀신이 전혀 반응하지 않았던 이유가 일부 설명이 된다. 고질적인(chronic) 귀신들림이었다는 점이다. 이미 이 아이의 몸에 수년 동안 거주하면서 주인행세를 해왔던 귀신이었던 것이다. 매우 흥미로운 점은 이 귀신이 "듣지 못하며 말 못하는" 귀신이었다. 제자들이 이 귀신을 쫓아내려고 했을 때 말하는 귀신이었다면 제자들을 무리 앞에서 조롱하며 수치까지 주었을 것이다. "너희들이 예수님의 제자 맞아? 나를 쫓아내보지? 너희들은 초보 수준이야! 너희 믿음이 없는 것 내가 잘 알지! 기도생활도 잘 안했지! 나는 못나가!” 등으로 반응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귀신은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므로 괴성을 질러도 제자들이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나갈지어다"라고 말해도 듣지 못하다보니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제자들도 난감했을 것이다. 귀신의 정체를 제대로 모르다보니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다고도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진단을 정확하게 해야 치료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음을 오늘 본문에서 다시 깨닫게 된다.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님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This kind can come out only by prayer)라고 대답하셨다. 예수님이 귀신 앞에서 기도를 해서 고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기도 외에는 이런 종류의 귀신은 나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는 경험과 더불어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보내고 내려오셨다. 하나님의 음성도 듣고 내려오셨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예수님은 성령이 충만한 상태에서 산을 내려오신 것이다. 성령이 충만한 예수님의 눈 앞에서 이 귀신의 정체는 그대로 노출될 수 밖에 없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에 성령이 충만하게 임했던 베드로는 소유를 팔아 판 값의 일부는 숨기고 전부인 것처럼 헌금했던 아나니아를 향하여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행 5:3)라고 말할 수 있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기도를 할 때 성령의 능력을 힘입으며 영적인 분별력이 생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대했던 베드로처럼 소위 투시(透視)하는 능력이 생긴다는 말이 아니다. 선과 악을 분별하는 힘이 생기며 하나님의 뜻이 조금씩 명료해지며 순종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특히 마귀가 사용하는 전략에 대해서 분별력이 생긴다는 의미이다. 제자들도 그 아이가 귀신이 들린 줄은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귀신의 정체를 모르다보니 접근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오늘 본문을 읽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기도로 영적 무장을 할 것을 교훈하신다. 평소에 기도하는 사람은 영적 분별력과 민감성이 자라난다. 귀신의 정체까지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성령님이 주시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상담하면서 축사를 해본 적은 없지만). 


기록된 성경 말씀과 더불어 역사하시는 성령님이 우리 각자의 마음에 내주하고 계신다. 성령님의 내주와 역사를 의지하며 의식화하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할 수 있다. 천사처럼 위장하고 다가오는 마귀와 귀신들의 정체를 분별하고 대적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했던 권면이 나에게도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도 꼭 필요한 말씀이다.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 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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