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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

유다의 왕 아사는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찍고...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대하 14:2-5)라고 기록될 만큼 하나님을 전심으로 따르며 순종했던 믿음의 왕이었다. 문제는 그가 재위한지 36년이 되었을 때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공격하며 라마를 건축하고 북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왕래하지 못하도록 했을 때 인본주의적인 방식으로 바아사를 물리치려고 했다. 그는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 곳간의 은금을 가져다가 아람 왕 벤하닷에게 조공물로 보내며 바아사를 쳐서 도와달라고 요청하였다. 이때 선견자 하나니가 아사에게 직언하기를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대하 16:7)이라고 말하면서 이 본문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왕에게 전했다. 그는 아사왕의 불신앙적인 행동에 대해서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대하 16:9)라고 말했다. 아사는 회개하는 대신 크게 노했고 하나니를 옥에 가두었다. 역대하 기자는 "그때에 아사가 또 백성 중에서 몇 사람을 학대하였더라"(대하 16:10)라고 부연해서 기록했다.

 본문의 배경을 통해 볼 때 하나님이 자기를 전심으로 찾는 자에게 능력을 베푸신다는 말씀에서 "전심으로"의 뜻이 "끝까지"라는 의미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사 왕은 처음부터 중간까지는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하나님을 경외했지만 마지막이 좋지 못했다. 인본주의적인 길을 걸었다. 북이스라엘 왕 바아사와의 전쟁 사건 이후 얼마 안되어 재위 39년에 그는 발에 위중한 병이 걸렸으나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라고 그의 모습을 역대하 기자는 기록하였다(대하 16:12). 의원의 도움을 받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도움에만 초점을 맞추고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은 불신앙이 나쁜 것이었다.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한자 4자 성어가 있다. 처음보다 나중이 좋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성화의 과정은 반드시 처음보다 나중의 모습이 더 구별되며 거룩해지는 것이다. 아사의 모습은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퇴행"(regression)의 모습을 보여준다. 솔로몬도 아사와 비슷하게 처음의 출발은 좋았으나 나중이 좋지 못해서 우상숭배하며 이스라엘이 분열왕국으로 나뉘어지는 단초를 제공하고 말았다. 용두사미와 대조되는 4자성어는 "초지일관(初志一貫)"이다. 처음의 뜻을 끝까지 일관성있게 유지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일곱교회 중에서 에베소교회는 여러 면에서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지만 아울러 경고를 받았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4).

 하나님의 성품을 핵심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는 "인자와 신실"(love and faithfulness)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언약한 백성과 자녀에게 끝까지 신실하게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변절하거나 용두사미처럼 사랑하는 분이 아니시다.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Saints) 교리는 하나님의 신실성을 잘 말해준다. 우리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끝까지 신실하게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며 필요하다. 하나님을 향한 충성심(loyalty)를 끝까지 변함없이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현실적으로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 만이 하나님을 백퍼센트 사랑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신앙의 여정을 걷다보면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에서 기복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랑이 식는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고 마음이 나뉠 때도 있다. 이때마다 성령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해야 한다.

 야고보는 "지혜가 부족하거든...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말하면서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he is a double-minded man)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라(unstable in all he does)”(약 1: 6-8)라고 두 마음을 품은 자에 대해서 말했다. 두 마음을 품은 자는 의심하는 자이다. 하나님이 지혜를 구할 때 주시는 분이심을 끝까지 믿고 인내하면서 기도하는 자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좇으며 신뢰하는 자이다. 반면에 두 마음을 품은 자는 응답이 늦어지면 조바심을 내며 의심하며 마음에 요동치는 것을 겪는 자이다.

 두 마음을 품는 자의 모습을 심리학에서는 "양가 감정"(ambivalent feelings)을 느끼는 자라고 표현한다. 모순된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믿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믿기 힘든 경우에 느끼는 감정을 의미한다. 마음이 나뉘면 이것도 갖고 싶고 저것도 갖고 싶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따르려면 자신의 생각과 뜻을 "내려놓아야" 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따르며 순종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원리를 제공한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을 전심으로 믿고 따른 대표적인 인물을 들라면 여호수아와 갈렙을 들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백성들이 불신앙적인 열 명의 정탐 지도자들의 보고에 낙담하고 원망할 때 하나님을 전심으로 좇음으로써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은혜를 누렸다. 갈렙이 가나안에서 땅을 분배받을 때 아낙 자손이 사는 헤브론의 산지 지역이 점령하기에는 너무 힘든 지역이었지만 오히려 그 지역을 기업으로 요청하는 본문에서 "전심으로"(wholeheartedly) 하나님을 따랐다는 표현이 두번 등장한다(9절("충성하였은즉") 14절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신약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심으로 믿고 전파했던 인물은 사도 바울로 볼 수 있겠다. 그는 마지막 푯대를 향하여 "끝까지" 신실하게 신앙의 경주를 했던 신앙 인물이었다. 그가 가진 마음은 모든 성도들이 본을 삼아야 하는 마음이다. 바울 자신도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 받으라"(고전 11:1)라고 담대하게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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