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무후무(全無後無)한 환난과 성도의 자세
- kleecounseling
- 2025년 12월 20일
- 1분 분량
2025년 12월 19일
본문: 마 24:15-28
제목: 전무후무(全無後無)한 환난과 성도의 자세
예수님은 세상 끝에 전무후무(全無後無)한 환난(distress)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21절).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당할 때 겪었던 비참함이나 남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의해 망했을 때 겪었던 비참함보다 더 비참한(dreadful) 환난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겪었던 비참함은 포위된 상태에서 굶주림으로 인하여 엄마들이 자신의 아이를 삶아먹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환난보다 더 큰 환난이 올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라(How dreadful it will be in those days for pregnant women and nursing mothers!)"(19절)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이 말씀은 자신의 아이를 삶아 먹는 것과는 또다른 차원의 고통을 의미한다. 제대로 된 엄마라면 자신이 죽는 것은 그래도 괜찮지만 임신 상태에 있는 태아나 젖 먹는 자식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 자체가 형언할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서 하나님이 지적했던 악행 중의 하나는 전쟁 중에 광폭한 군인들이 임신한 여인의 배를 가르는 만행이었다. 북이스라엘 므나헴이 반역해서 왕 살룸을 죽인 후에 딥사에 있는 성을 공격하면서 이런 행동을 했다고 열왕기 기자는 기록했다(열상 15:16 참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다니엘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시면서 "멸망의 가증한 것"(the abomination that causes desolation)이 거룩한 곳에 서는 것을 볼 때 도망하라고 말씀하셨다. 다니엘서에 세 번 정도 언급된 표현인데 두 번은 "가증한 것을 세울 때"라는 표현함으로써 가증한 것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우상을 의미하였다. 거룩한 곳과 가증한 것은 어울릴 수 없다. 역사적으로 남유다가 멸망할 때 예루살렘 성전에 이방인 바벨론 군사들이 들어가 훼파했다. 예수님 당시 로마의 총독이었던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제물에 섞은 불경한 행동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던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눅 13:1).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갈릴리 사람들의 일부를 죽여 그들의 피를 제물에 섞게 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일"이었다 (로마의 신들에게 드리는 자신들의 제물에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섞은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하여 멸망당하면서도 거룩한 곳 성전은 훼파되었고 로마군인들의 말발굽에 짓밟혔다. 이런 역사적인 사건들은 세상 끝 이전에 임할 전무후무한 환난을 예표하는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예수님은 이런 환난이 일어날 때 죽음을 각오하고 당당하게 맞서거나 복음을 변증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도망하라고 말씀하셨다. 그것도 급하게 산으로 도망하라고 말씀하셨다. 도시나 성 안에 있으면 환난을 겪어야 하는 대상들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도망하되 긴급하게 도망하라고 말씀하셨다. "지붕에 있는 자들은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17-18절). 이 말씀은 마치 소돔성이 유황불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직전 지체하는 롯과 그의 아내와 두 딸을 천사들이 손으로 잡아끌어 성 밖으로 나가게 하는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그들은 귀중품이나 아끼는 세간 살이 하나도 들고 나가지 못했다. 그들은 급하게 "빈손으로"(empty-handed) 성 밖으로 빠져나와야 했다. 하나님을 그들이 안전한 지역에 도착할 때까지 심판을 지연하셨다. 안타깝게도 피신하는 과정에서 롯의 아내는 천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으로 변하고 말았다. 마치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밭에서 일하다가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한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더 중요한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포기하는 "전적인 구별짓기"가 지혜로운 결정임을 깨닫게 된다.
오늘 본문의 강조점은 아니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급하게 산으로 도망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육신의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영원한 생명을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경고하는 말씀으로도 적용할 수 있다. 예수님은 몸을 죽이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몸과 영혼을 지옥불에서 멸하시는 자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다(마 10:28 참조). 멸망의 가증한 것은 마지막 때에 마치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행동하는 마귀를 의미한다. 마귀는 우리의 육신을 죽일 수 있다. 마귀는 여전히 죽음의 권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모든 인류는 원죄의 결과로 반드시 죽는다. 만약 모든 인간이 죽음에서 끝나면 마귀는 자신이 거룩한 곳에 서며 거룩한 자리에 앉아 왕노릇 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셨다. 창세기에 예언된대로 여인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이 뱀의 머리를 밟아 깨뜨리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 속에서 마귀는 아직 완전히 패배하지 않았고 마지막 세상 끝에 다시 한번 놓임을 받아 그 힘을 행사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했다.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계 20:7-8). 바울 사도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다는 표현과 연결되는 말씀을 데살로니가후서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니라"(살후 2:2-4).따라서 전무후무한 환난이 닥쳐온다고 할지라도 믿는 자들이 결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은 믿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최후 승리가 약속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 2:8-12).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 환난의 날을 하나님이 짧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no one will survive)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22절). 예수님은 환난으로부터 도망하는 시기나 날이 겨울이나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다(20절).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전쟁도 하지 않고 안식일에는 멀리 걸어가지도 않기 때문에 만약 전쟁과 같은 환난이 안식일에 닥치면 그들은 앉아서 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겨울과 같은 추운 시기에는 산으로 도망을 친다고 할지라도 생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시기를 통제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주권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이 시행될 때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시행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고 기도해야 한다. 특히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위기 상황에 있는 대한민국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조국 대한민국에 전무후무한 환난이 일어나지 않도록 성도들은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 깨어 기도해야 할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