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이단들의 성경인용의 특징

2025년 9월 10일 아침 

마태복음 4장에서 마귀는 예수님을 거룩한 성(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며 시편 91편 11절과 12절 말씀을 인용하며 두번째 유혹을 시도한다. 말씀을 인용하기 전에 마귀는 다시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 되심을 논박한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사실 마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잘 알고 있었다. 예수님이 탄생하던 시점부터 마귀는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헤롯을 통해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두 살 아래의 모든 남자 아이들을 죽이게끔 했던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이 사실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하기도 했다.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계 12:5-6). 거라사 지방에 있던 귀신들린 자를 예수님이 고치시기 위해 찾아가셨을 때 그는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막 5:7)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따라서 마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못믿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이중구속적인 상황에 처하게 해서 자신의 말을 따랐다는 오점을 남기기 위해 유혹한 것이다. 마치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잡아서 예수님께 와서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요 8:5)라고 예수님을 시험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은 인식하지 못했지만 사실상 마귀에게 속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이중구속적인 상황에 빠뜨려 예수를 책잡고 고발하기 위해서 이와 같은 시험을 한 것이었다. 율법에 따라 돌로 치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예수는 사랑을 외치며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한 내용과 배치된 내용을 가르쳤다고 하는 올무로 프레임을 씌웠을 것이다. 반대로 돌로 치지 말고 용서해주라고 말한다면 예수가 율법을 어기는 자라는 프레임을 씌웠을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뜨리고자 했던 것이다. 마귀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인용한다는 것은 놀랍지 않다. 마귀는 우리보다 성경말씀을 더 꿰고 있을 수도 있다. 문제는 마귀는 성경말씀을 알아도 믿거나 순종하지 않는 자라는 사실이다. 마귀는 처음부터 하나님께 불순종한 자이며 하나님을 대적한 자이며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을 자신과 더불어 파멸로 이끌고자 했던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다. 

  이 거짓의 아비가 마치 천사처럼 위장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한다고 하더라고 속으면 안된다. 성경을 청산유수같이 암송한다고 해서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닐 수도 있다. 이단들은 더 성경을 인용한다. 자신들의 논리에 맞는 성경말씀들만 외우다시피해서 연결짓기한다. 때로는 교묘해서 기성 교회 목사들까지 그동안 자신이 알았던 것이 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소위 "회심"해서 이단으로 빠질 정도이다. 마귀가 인용한 시편 말씀은 진리이다. 하나님은 원하시면 천사들을 명하셔서 중력의 질서를 거스릴 수도 있는 분이시다. 그분은 여호수아의 기도를 응답하셔서 해와 달의 운행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시기도 했다.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에서 폭풍우와 씨름하고 있던 제자들이 탄 배로 물위를 걸어서 찾아오시기도 했다. 그러나 성경말씀을 악한 동기로 사용하기 위하여 "오용"(misuse)하거나 "남용"(abuse)하는 것은 악하며 마귀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마귀는 시편의 말씀을 믿기 위해 인용한 것이 아니다. 그는 예수님을 시험하며 유혹하기 위한 악한 목적으로 인용한 것이다. 올무를 놓기 위해 인용한 것이다. 성경말씀이라고 해서 순종한답시고 올무에 빠져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이 아내를 때려놓고 에베소서 5장 22절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라는 말을 인용하며 아내를 무력화하는 것은 악한 행동이며 마귀가 기뻐하는 일이다. 이것은 마치 나무 몇그루만 보지 전체 숲을 보지 못하는 강박성 성격장애(obsessive-compulsive personality disorder)를 가진 사람의 모습과도 같다. 말씀의 정신을 알지 못하거나 무시한 채 성경의 일부 말씀을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기 위해 오용하거나 남용하는 것은 성경을 기록한 성령 하나님을 격노하게 하는 행위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성경말씀은 양면을 다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한면만 인용하거나 강조하면 말씀의 정신이 훼손된다. 말씀의 한 단면만 보거나 말씀의 중심을 보지 못한 채 한두 구절에 집착해서 씨름하는 신앙인들을 가끔씩 상담현장에서 접하게 된다. 아내를 향한 말씀 바로 다음에 남편을 향한 말씀이 바로 이어 나오는데도 한구절만 가지고 상대방의 힘을 빼앗는 행동은 요즘 자주 사용되는 용어인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다. 

   예수님은 마귀의 유혹에 전혀 당황하는 기색없이 또 다른 성경말씀을 인용해서 마귀의 유혹을 지혜롭게 물리치셨다. 마귀는 예수님의 대답에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마지막 유혹을 시도한다. 예수님의 두번째 시험 본문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영적인 분별력과 성숙함을 갖추어서 성경말씀을 잘 풀며 연결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단들의 접근에 속아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목회자들이 잘 가르쳐야 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No suffering, no crown

2025년 11월 27일  본문: 마 19:23-30 제목: No Suffering, No Crown 오늘 본문은 오해될 수 있는 말씀을 담고 있다. 대부분의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 헬라어 성경을 보니 "어떤 부자"(a rich man)는 천국에 어렵게(with difficulty) 들어갈 것이라는 것이 23절의 의미임을

 
 
 
반면교사인 부자 청년 이야기

2025년 11월 26일  본문: 마 19:16-22 제목:  반면교사인 부자청년 이야기 오늘 본문은 마태, 마가, 누가 모두 기록한 본문이라는 점에서 중요성이 더하는 본문이다. 세 성경 기자 모두 본문에 등장하는 이 청년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만한 지명도가 있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누가는 이 청년이 "어떤 관리"(a certa

 
 
 
예수님이 안수해주신 어린 아이들

2025년 11월 25일  본문: 마 19:13-15 제목: 예수님이 안수해주신 어린 아이들 오늘 본문은 3절의 짧은 분량이지만 마태, 마가, 누가 모두 이 본문을 다루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마가는 제자들이 아이들을 꾸짖었을 때 예수님이 "노하셨다(he was indignant) "라는 표현을 추가했다. 그리고 "그 어린 아이들은 안고(he took th

 
 
 

댓글


사업자등록번호 : 115-48-01055

kleecounseling@gmail.com

© 2025 by 이관직 상담실. Proudly created with love.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