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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보다, 솔로몬보다 크신 예수님

2025년 10월 20일 월요일 새벽 

본문:  마태복음 12:38-42

제목: 요나보다, 솔로몬보다 크신 예수님 


어제 읽은 본문과 연결지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질문을 이해해보고자 한다. 바리새인들은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24절)라고 예수님이 행하신 치유 사역을 폄하하였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34절)라고 질책하셨다.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38절을 개역개정판은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라고 번역했는데 헬라어 성경을 찾아보니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대답하여 말하되(answered saying)"의 내용임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한 말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반응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들을 예수님을 "선생님(랍비)"라고 호칭하였다. 오늘날의 랍비도 그렇지만 예수님 당시의 랍비들도 우리가 흔히 쓰는 "선생님"의 의미보다 훨씬 존경을 담아 종교지도자들에게 쓰는 표현이었다. 예수님은 랍비라고 불리웠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이미 질책하셨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른 것이다. 겉으로는 최고의 예우를 갖추며 예수님을 높이는 것처럼 호칭했지만 그들의 마음은 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의 위선과 외식이 그들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오늘 본문의 사건이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주신 사건과 다른 시점에 일어난 사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마태복음의 문맥에서는 연결지어 해석해도 무리가 전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중의 몇 사람은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28절)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말씀을 듣고도 표적(a sign ) (마가는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이라고 명료화했다, 막 8:11)을 요구한 것이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이 보며 말을 하는 이적이 일어났음을 보고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또 다른 표적을 예수님께 요구한 것이다. 귀신을 쫓아내신 것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 쫓아낸 것이라고 왜곡해서 해석한 그들은 설령 또다른 표적들을 보여준다고 할지라도 회개하거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독사의 자식들"이었기 때문이다.


마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사십일 동안 금식하며 광야에서 지내신 예수님에게 찾아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 4:3)라고 시험하였다. 마귀의 자식인 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걸림돌에 넘어지게 하려고 했던 것처럼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시험했던 것이다. 


믿음은 이적과 기사를 보고 믿는 것이 아니다. 바울 사도도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잘 지적하였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 8:24-25). 마지막 날에 징조에 대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 중에서 그 날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큰 표적(great sign)과 기사(wonders)를 보이더라도  믿지 말라고 경고하신 내용이 있다(마 24:24). 요한계시록에 보면 마귀를 상징하는 짐승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계 13:13-14). 


물론 일부 성도들에게는 이적과 기사를 체험하는 것이 믿음을 갖는데 확신을 주는 도움을 준다. 그러나 그것은 주관적인 확신을 갖게 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은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은총이다. 믿음은 그런 점에서 수동적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되며 선택된 자들에게는 믿어지는 은총이 임한다. 그러나 마귀에게 속한 자들은 설령 이적과 기사를 체험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다시 옛 삶으로 되돌아간다. 예수님이 씨뿌리는 비유에서 알려주셨듯이 이들은 일시적으로는 복음의 메세지를 듣고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이내 뿌리가 없어 세상의 염려와 유혹과 욕심에 기운이 막혀서 죽는다.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시험하는 질문에 대해서 그들을 포함하여 표적을 구하는 자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a wicked and adulterous generation)"라고 규정하셨다.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35절)는 말씀대로 그들은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심판 날에 니느웨 사람들과 솔로몬의 지혜의 말을 듣기 위해 땅끝 나라에서 찾아온 남방 여왕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를 정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니느웨 사람들은 표적을 보지 않고서도 "사십일이 지나면 이 성이 무너지리라"는 요나 선지자의 말을 듣고 금식하며 회개하는 반응을 했기 때문이다. 남방 여왕이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서 경청했던 솔로몬보다 훨씬 크신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고 기적을 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았던 그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경고하셨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복음을 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악하게 자기중심적인 삶이 최고인양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들도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속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타로점을 보거나 오늘의 운세를 찾아보며 심지어 점술인을 찾아가기까지 하는 미혹된 삶을 살아가면서도 성경을 읽지 않으며 예수님을 찾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자 두려운 일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성경은 반복적으로 경고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마귀에게 속해서 그 길을 걷고 있는 이가 혹시라도 있다면 표적을 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내신 구원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은혜가 임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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