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진정한 가족
- kleecounseling
- 10월 23일
- 1분 분량
2025년 10월 22일 새벽
본문: 마태복음 12:46-50
제목: 예수님의 진정한 가족
오늘 본문은 마가와 누가 모두 기록한 본문이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의 본문을 읽으면 이 상황을 좀더 이해할 수 있다. 마가는 말씀을 듣고 있던 제자들을 포함한 무리들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빙 둘러 앉아 있었다고 기록했다(A crowd was sitting around him). 마가는 먼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서 갈릴리 지역까지 찾아온 서기관들이 예수님이 바알세불에 지폈다고 말하며 그가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좇아낸다고 말했던 본문 바로 앞에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막 3:21)라고 기록함으로서 이어지는 31절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를 알게 해준다. 즉 마리아와 예수님의 동생들은 사람들이 "예수가 귀신들렸다 또는 미쳤다"라고 말하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것이다. 마태와 마가는 씨뿌리는 비유로 시작하는 천국 비유를 이 본문 앞에 배치한 반면 누가는 이 본문을 씨뿌리는 비유 다음에 배치하였다. 마태와 누가는 예수님께 그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와 말하고 싶어한다고 무리 중 어떤 사람이 말을 전했다고 기록한 반면 마가는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어떤 사람을 보내어 말을 전했다고 기록했다.
이 본문에서 예수님을 주위로 빙 "둘러"(around)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큰 무리와 그 무리의 "외곽에"(outside) 계속 "서서" 예수님에게 "말하고" 싶어하는 마리아와 남동생들의 아주 작은 무리로 나뉘어진 장면이 시각적으로 그려진다. 예수님이 말씀을 마치시고 자신의 가족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는지에 대해서는 세 복음서 기자 모두 침묵한다.
마태는 흥미롭게도 본문 뒤에 이어지는 13장에서 여러 천국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님이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그 곳을 떠나서 고향으로 돌아가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13:53-54)라고 말하며 예수님의 가족들의 반응과 고향 사람들의 반응을 연결시켰다. 예수님이 고향에 돌아가셔서 고향 회당에서 가르치셨을 때 고향 사람들은 놀라며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라고 반응했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족 배경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했다.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56절). 그들은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이 "하늘"(성령 하나님)로부터 온 것이라는 점을 믿지 않았다. 서기관들처럼 바알세불과 같은 귀신의 왕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성령의 능력을 왜곡하며 폄하하는 성령 훼방 죄를 범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58절). 이때 예수님은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57절)라는 유명한 말씀을 하셨다. 자기 고향과 "자기 집"까지 포함시킨 것을 보면 아직 이 시점까지는 마리아를 포함하여 예수님의 형제들과 자매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눈과 귀가 열리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요한복음의 가나혼인 잔치의 기적 사건에서 마리아가 보인 태도와 예수님 탄생 전에 천사가 전해준 말과 동방박사들의 방문과 목자들의 방문, 그리고 열두살 때 있었던 에피소드 등을 마음에 담아두었던 마리아의 경우에는 예수님의 동생들과는 달리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이미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지만). 어느 시점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사건 이후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의 형제들도 제자들의 무리에 포함이 되었음을 사도행전 1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전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약 백 이십 명이 모여 기도했을 때 마리아와 예수님의 아우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 1:14). 예루살렘 교회의 핵심 지도자이자 야고보서의 저자였던 야고보와 유다서의 저자인 유다(Jude)가 예수님의 아우였다는 사실에서("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유 1:1) 예수님이 미쳤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염려가 되어 찾아왔던 예수님의 가족들이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니라"(마 12:50)라는 말씀대로 옥토에 떨어진 씨가 되어 삽십배, 육십배, 백배의 결실을 맺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 백 이십명의 무리에 포함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부활을 믿지 않았던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형사취수제 율법을 언급하면서 가상의 사례로 일곱 형제가 모두 한 여자와 결혼을 했는데 자식이 없이 죽었을 때 부활 때에 그 아내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이 때 예수님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마 22:29-3)라고 대답하셨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써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하나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예수님의 재림과 모든 인류의 부활로 이어지는 완전한 하나님 나라는 "아직 아니" 임했지만 그 질서는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육신적인 가족관계를 넘어서는 영적인 가족관계를 인식하고 살아야 함을 오늘 본문을 통해 가르치신다. 이 땅에서 혈연이나 법적으로 맺고 있는 부모자식 관계나 형제자매 관계는 모두 "잠정적 대상관계"(transitory object relations)이다. 이 세상에서만 유효한 가족관계이다. 물론 가족관계는 중요하며 부모를 존경하며 형제와 자매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성경적이며 중요하다. 하지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영적관계가 더 일차적이며 영원으로 이루어지는 관계임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교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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