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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무화과나무

2025년 12월 4일 

본문: 마 21:18-22

제목: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무화과나무


왕처럼 환호받은 날 예수님은 왕의 도성인 예루살렘에 머물지 않으시고 성에서 나가셔서 베다니에서 하룻밤을 보내셨다. 그리고 아침 일찍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향하셨다. 오늘 본문 첫 절은 "그가 시장하셨다"(he was hungry)라고 시작한다. 보통 아침 일찍 일어나면 시장기를 느끼지 않는데 이른 시간에 배고픔을 느끼셨다면 전날 저녁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창세 전부터 계셨던 하나님이신 그가 인간으로 이 땅에 태어나 마지막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 시장기를 느꼈다는 것은 배고프고 가난한 사람들을 체휼하신 그의 인성(人性)을 엿보게 한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며 기도하셨다. 그때 마귀는 주리신 그에게 주변에 널려 있는 돌을 명하여 떡이 되게 하여 먹으라고 시험했다. 본문의 상황에서는 예수님은 배고픔을 느끼셨고 멀리 떨어져 있는 무화과나무를 보셨다. 길 가에 서 있는 이 무화과나무는 따로 주인이 있는 나무는 아니고 야생으로 자란 나무일 것이다. 가까이 가셔서 잎을 헤치며 열매가 있는지 확인하셨으나 아무 열매도 없었다. 마가는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막 11:13)라고 무화과나무에서 열매가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였다. 예수님도 무화과나무가 열매 맺는 때를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 무화과나무에게 "이제부터 영원토록(다시는)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는 그 나무가 "즉시" 말랐다고 기록했다. 마가는 "멀리서" 잎사귀 있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다가가셨다고 기록했다. 그리고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제자들이 본 것이 마치 그 다음 날인 것처럼 기록했다. 오늘 본문 사건을 기록한 마태와 마가의 기록을 종합하면 무화과나무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즉시 말랐다. 그런데 다음날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다시 같은 길을 가면서 뿌리째 말라 있는 모습을 본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he remembered)"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막 11:21)라고 말한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마가는 베드로의 말에 대해 예수님이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3-24)라고 기도의 응답에 대하여 말씀하신 내용과 연결하였다. 마태는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 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라고 마가와 비슷하게 믿음과 기도와 연결해서 대답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했다. 마태는 베드로가 아닌 제자들이 무화과나무가 시든 것을 보고 "무화과 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라고 질문한 것으로 기록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함께 놀라서 함께 질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하신 행동과 말씀은 해석상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마가가 밝힌대로 무화과열매를 맺는 때가 아닌데 열매가 없다고 예수님이 저주에 가까운 말씀을 한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해석이 있다. 예수님이 열매맺는 시기가 아닌 상황에서 무화과를 기대한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본적인 해석이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행적은 의미가 있고 오류가 없다. 예수님이 시장하고 당이 떨어져서 화가 조절이 안되어 충동적으로 저주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십자가 사건을 앞두고 이 이 사건을 통해서 제자들만 볼 수 있는 놀랄만한 이적을 행하셔서 믿음의 기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교육의 기회로 삼고자 한 것이다. 이 무화과나무 입장에서는 억울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상한 갈대도 마저 꺾지 않으시는 주님의 심정을 볼 때 자신의 능력을 남용하는 분이 아니시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본문을 해석할 필요가 있다. 무화과나무의 죽음을 재해석한다면 이 무화과나무는 유대지경에 있었던 수많은 무화과나무 중에서 예수님과 연결짓기가 되는 특별한 은혜를 누렸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 무화과나무는 창조주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은혜를 입었다. 마치 갈릴리 바다와 풍랑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피조물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했던 것처럼 이 무화과나무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했던 나무였다. 비록 예수님의 말씀대로 열매를 더 이상 못 맺을 뿐 아니라 즉시 말라 죽음으로써  오고오는 세대의 많은 성도들에게 무언의 교훈을 하는 교보재로 쓰임받았던 나무였다. 사람들에게 무화과를 제공해주는 일반적인 기능을 하다가 자연사하는 다른 무화과나무들과 구별된 특별한 나무로 쓰임을 받은 것이다. 예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심을 계시하는 선지자적인 사명을 감당하고 죽은 영광스러운 나무가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인본적인 해석 대신에 큰 그림을 보고 접근하는 해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창조주이신 예수님은 제자들과 그를 좇는 모든 성도들에게 믿음으로 기도하고 선포할 때 응답이 될 것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권위와 능력을 주셨다. 예수님은 진실과 진리만을 선포하셨다.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신대로 그대로 될 것임을 믿어야 한다. 치명적인 암에 걸려서 고통하는 분들을 위해 치유 기도를 믿음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외형적으로 볼 때 기도가 응답되지 않은 것처럼 여겨지는 경우들이 꽤 있다. 어떤 이들은 실족하기까지 한다. 기적적으로 나았다가도 얼마가지 않아 재발해서 소천하는 분들도 있다. 우리는 큰 그림을 알 수 없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즉시" 무화과나무가 죽는 반응을 했던 것처럼 "즉시" 기도가 응답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한참 지나서 응답된다. "그분의 시간 안에서"(in His time) "그분의 방식대로"(in His ways) "그분의 뜻대로”(in His will) 응답될 것이다.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분별하고 기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기도하는 것을 쉬거나 포기하는 것은 죄이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기도하되 기도의 응답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고 위임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주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신뢰할 때 우리는 믿음의 기도를 계속 드릴 수 있고 기도의 결과에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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