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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에게서 배우는 의사소통의 원리 

2025년 12월 5일 

본문: 마 21:23-27

제목: 예수님에게서 배우는 의사소통의 원리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 성전에 이틀 연거푸 들어가셨다. 첫째날은 성전을 정화하는 일을 하시고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고쳐주셨다. 두번째 날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첫째날에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성전을 정화하시는 행동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못하고, 아이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찬송하는 것에 대해서 분노하면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라고 질문했다. 둘째날에는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고 질문했다. "이런 일"은 가르치는 일과 전날 성전을 정화한 일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서 질문했다. 그들은 백성들에게 권위를 주장하며 사용하는 자들이었다. 권위를 제대로 인정받는 자들이 아니었다. 마태는 예수님게서 산상보훈으로 백성들을 가르쳤을 때 무리가 보인 반응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 7:28-29). 영적으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백성들 수준보다 훨씬 못했다. 백성들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권위가 있음을 깨달았고 경탄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의 권위가 하늘로부터 온 것임을 믿지 않았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더더욱 믿지 않았다. 그들은 세례요한의 권위도 믿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위가 위협받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자기들의 이익이 침해당할 것을 우려해서 시기하며 질투하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적인 자들이었다. 더 나아가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데 앞장 섰던 점에서 반사회성 성격장애적인 자들이었다. 


마태는 26장에서 모든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께서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2절)라고 네번째로 자신의 십자가 고난을 예고하셨던 것을 기록했다. 바로 이어서 기록한 말씀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행동에 대한 것이었다.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말하기를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3-5절).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시기하며 질투했다. 그러나 백성들의 반응에 대해서 두려워했다. 민란이 나게 될 때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지며 난처해질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예수님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악한 의도가 있는 질문에 대해서 직접 대답하지 않으시고 역으로 질문하셨다. 그들이 흔히 잘 사용하는 이중구속적인 질문을 역으로 던지셨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그들은 즉답을 하지 못하고 구차하게도 서로 의논했다. 그들 중 누구도 즉답할 수 있는 영적 분별력이 있는 지혜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혜자로 자처하며 백성들을 인도하는 지도자들이었지만 실상은 영적 맹인이었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당시 유대 백성들은 맹인 지도자들의 인도를 받는 "길 잃고 방황하는 양들"이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스스로 한 말처럼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세례요한을 선지자로 믿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세례요한에게도 찾아가서 "네가 누구냐"(요 1:19)이라고 질문했다. 그리고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요 1:25)라고 질문했다. 세례요한이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요 1:26-27)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난국에 빠졌다. 그들의 의논의 내용은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의논 속에서 성전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던 백성들이 많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백성들의 시선을 의식했다. 그들은 외식하는 자들이었다. 회칠한 무덤처럼 겉으로만 경건한 척 했지만 속에는 썩은 뼈들이 가득한 무덤과 같았다. 마침내 그들이 내린 결론적인 대답은 "우리는 모른다"였다. 실상은 "우리는 믿지 않는다"는 대답이었다. 그들은 세례요한의 사역에 대해서 믿지 않았다.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지도 않았다. 임박한 심판을 선언하고 회개를 촉구했을 때에도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앞장 서야 했던 자들이 실제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을 깨닫지 못했고 믿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을 강퍅했고 길가와 같은 마음 밭의 상태였다.


예수님은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라고 대답하셨다. 예수님에게서 성경적인 의사소통의 원칙을 배울 수 있다. 돼지에게는 진주를 던져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질문한다고 꼭 대답을 해주어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빌라도의 질문에 대해서는 예수님은 대답하지 않으셨다. 대답해도 알아듣지 못할 경우에는 대답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경우에도 예수님에 대해서 참으로 궁금해서 질문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난처한 입장에 빠뜨려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질문했던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나눈 상호작용을 이해함에 있어서 잠언의 말씀이 빛을 던져준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10:19).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어 죽느니라"(10:21).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거니와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하느니라"(12:6). "악인은 엎드러져서 소멸되려니와 의인의 집은 서 있으리라"(12:7). "사람은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으려니와 마음이 굽은 자는 멸시를 받으리라"(12:8).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말미암아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12:13).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 증인은 속이는 말을 하느니라"(12:17).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12:19). "슬기로운 자는 지식을 감추어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미련한 것을 전파하느니라"(12:23).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13:2).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15:2). "거만한 자는 견책 받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며 지혜 있는 자에게로 가지도 아니하느니라"(15:12).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15:23).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15:28). "한 마디 말로 총명한 자에게 충고하는 것이 매 백 대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히느니라"(17:10).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냉철한 자는 명철하니라"(17:27).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그의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겨지느니라"(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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