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 kleecounseling
- 2025년 1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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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7일
본문: 마 23:37-24:2
제목: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오늘 본문 중에서 마 23:37-39절의 내용은 누가복음 13:34-35절에도 등장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누가는 이 내용을 전체 24장 중에서 비교적 중반부에 언급했다면 마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앞두고 후반부에 배치했다는 점이다. 마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화있을진저"라고 일곱번 말씀하신 다음에 성전에서 하신 마지막 말씀으로 기록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라고 두번이나 안타까운 심정으로 부른 것은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도시를 의미하기보다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그들을 따르는 자들을 의미한 것으로 보여진다.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라고 이어 말씀하신 것을 보면 앞절 34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는 말씀을 들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의미하는 것임이 잘 드러난다.
평화를 의미하는 "살렘" 또는 "샬롬"과 "여호와가 준비하신다"는 뜻의 "이레"의 합성어인 "예루살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제단을 쌓았던 모리아산이 그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때 하나님은 이삭을 죽이는 대신 숫양을 예비하셔서 대신 제물로 드리게 하심으로써 아브라함은 그 땅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불렀다(창 22:14 참조). 이 예루살렘을 다윗왕 시대에 여부스 족속으로부터 정복해서 차지했고 솔로몬 시대에는 성전이 세워졌으며 유다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지금까지 예루살렘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핵심 성지가 되어 왔다. 십자군 전쟁도 이 예루살렘을 회복하기 위한다는 미명으로 시작된 것이다.
누가는 마태와 달리 오늘 본문을 다루면서 어떤 바리새인들이 와서 예수님의 신변을 걱정하는 선한 동기로, 또는 예수님을 예루살렘에서 나가도록 하기 위해서 거짓말로 "여기서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눅 13:31)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이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라고 대답하신 말씀을 추가했다. 예수님은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정죄를 받고 고난을 받을 것을 확신하셨던 것이다. 예루살렘은 실제로 구약의 선지자들이 외쳤다가 돌에 맞아 죽었던 곳이었다. 주로 예루살렘에 와서 외치다가 왕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거짓선지자들에게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백성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사야는 그들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사 1:10). 이사야는 예루살렘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유했다. 예루살렘은 의인 열 명이 없어서 유황불 심판을 받았던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악한 도시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않았을 때 예수님은 책망하며 소돔과 비교하여 말씀하셨다.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마 11:21-24).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장로들이 주축이 되어 있던 예루살렘은 이사야가 활동했던 당시 유다왕국의 모습과 흡사했다.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사 1:14-15). 그들은 강박적일만큼 종교적인 행위를 했지만 그들의 손은 선지자들과 보냄을 받은 자들을 배척하고 돌로 쳐서 죽인 피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에는 악독과 시기가 가득했고 마귀적이었다. 평화의 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예루살렘이 소돔과 고모라라는 이름이 더 적절할 정도로 악해진 것이다. 예수님은 이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종교지도자들을 향하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37절)라고 말씀하셨다.
역사적으로도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을 당했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들은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잡혀갔고 예루살렘은 완전히 훼파가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신 것처럼 70년 후에 예루살렘을 비롯한 유다 땅으로 그들의 일부가 귀환하도록 은혜를 베푸셨다. 학개 선지자를 통해 성전이 재건되게 하시고 느헤미야를 통해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게 하셨다. 말라기 선지자에게 주신 계시를 끝으로 약 4백년의 계시의 침묵기를 끝내고 마침내 예수님이 왕으로, 제사장으로, 그리고 선지자로 이 땅에 내려오셨다. 그러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를 믿지 않고 영접하지 않았고 건축자들이 쓸모없는 돌이라고 버리는 돌처럼 그를 취급했다. 그들은 마침내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데 앞장 섰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내다보시며 예언하셨다. 제자들은 성전 건물들의 아름다움과 위용을 예수님이 보고 감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깜짝 놀랄만한 말씀을 하셨다.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마 24:2). 38절에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하시고 불과 사십년이 채 못되어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은 문자 그대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로마군들에 의해 처참하게 훼파되고 멸망하고 말았다. 성전 돌과 돌 사이에 화려하게 장식했던 금을 꺼내기 위해서였다고 알려져 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이 성취되었다. 구약과 신약의 모든 말씀도 다 진리의 말씀이다. 그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죽은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말씀대로 살아나셨다. 하늘로 승천할 때 천사들이 말한대로 예수님은 다시 오실 것이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11).
2025년도 한해도 거의 저물고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주관하고 계신 하나님이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으로 예비하신 계획대로 역사는 흘러갈 것이다. 이 역사는 천년만년 지속되는 역사가 아니라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는 날이 반드시 오는 역사이다. 종점(eschaton)이 있는 역사이다. 개인적인 삶에도 종점이 있고 온 인류에게도 종점이 반드시 있다. 이 사실을 알고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며 예수님의 재림의 날을 대망하며 하루 하루를 의롭게 의미있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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