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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나병환자인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 

2025년 9월 16일 아침 

마태는 5장에서 7장에 이르는 산상보훈을 통해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약의 율법을 표상하는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하며 대조하였다. 시내산에 율법을 받으러 올라갔던 모세와 같이 예수님도 산에 올라가셔서 제자들에게 "새 계명"(new commandments)을 주시며 가르치셨다. 마태는 8장 1절에서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모세가 율법을 받은 후에 시내산에서 내려왔던 것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4장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23절)라고 하는 본문과 연결하면서 한 나병환자의 치유사건으로 8장을 시작한다.

  예수님께서 본문의 나병환자처럼 개별적으로 고쳐주신 경우가 있고 열명의 나병환자를 집단적으로 치유해주신 경우도 있다. 본문의 나병환자는 예수님을 따르는 큰 무리 중에서 예수님 앞에 나아와 무릎을 꿇고 자신의 나병을 고쳐주기를 간구하였다. 그의 행동은 당시 관습을 고려할 때 죽음을 각오한 행동이었다. 나병환자들은 일반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없었고 접근해서도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일반 사람들이 모르고 접근해도 "나는 부정하다, 부정하다"고 외쳐서 사람들이 의식적으로(ritually) 오염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율법에 따라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율법의 규정을 어기고 큰 무리 속에 자신의 나병을 숨긴 채 예수님께 나아온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주여"라고 부르며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는 놀라운 믿음을 고백한다. 

  모세의 율법은 이스라엘이 주변 국가들의 종교와 관습과 "구별짓기"하도록 해서 "거룩한" 구별된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주어졌다면 예수님은 그 율법의 정신을 나타내셨다. 예수님은 나병환자와도 "연결짓기"해서 그를 신체적으로도 치유하시며 의식적으로도 정결한 자가 되게 하신 점에서 모세와 대조를 이룬다.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을 존중하면서도 그 율법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드러내시기 위해 예수님은 그에게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4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놀랍게도 이 나병환자의 몸에 자신의 손으로 접촉하셨다(Jesus reached out his hand and touched him). 예수님은 나병환자와 직접적으로 "연결짓기"를 하신 것이다. 율법에 따르면 이 나병환자의 부정에 접촉하면 예수님은 일시적으로 부정한 자로 간주되어야 했다. 그러나 모세의 권위보다 훨씬 크신 권위와 능력을 가지신 예수님은 부정한 것이 표상하는 죄를 사하시며 깨끗하게 하시는 분임을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내셨다. 마태는 9장에서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했던 한 여자가 무리에게 둘러싸여 있는 예수님의 겉옷 자락을 만지기만 해도 낫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겉옷 가를 "접촉"하였을 때 "즉시" 그녀의 몸에 치유가 일어난 사건을 기록했다. 이 두 사건은 "부정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예수님과 연결되었을 때 의식적으로만 정결하게 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몸이 완전히 치료가 되었다는 점에서 공통부분이 있다. 여인의 경우는 그녀가 적극적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에 "연결짓기"했다는 점이 다른 점이다. 마가는 이 여인의 이전 상태를 기록함으로써 그녀가 얼마나 무력한 상태에 있었는지를 잘 표현하였다.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막 5:26). 나병으로 고생했던 한 남자와 완전수인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인해 항상 "부정한" 상태에서 가족들로부터도 격리된 채 살아야 했을 이 여자는 영적으로 하나님과 격리된 채 살아가는 모든 인류를 상징한다. 에덴에서 축출된 아담의 후예는 영적으로 "부정한"(unclean) 존재가 되어 나병환자처럼 살이 썩어도 통증을 자각하지 못한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나병환자와 혈루증환자는 수평적으로 공동체와 격리되어 살다가 죽어갈 인생을 표상한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는 어떤 해결책도 마련할 수 없는 절망적인 인류를 위하여 하나님이신 그분이 직접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내려오셨다. 그리고 그를 주로 고백하고 나아오는 모든 자들의 부정한 몸에 "터치"해주셨다. 그래서 그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이 전가(transfer)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이 되는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씀을 따라 우리가 치러야 할 삯을 대신 치르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셨다(redeemed us).  우리의 모든 부정함과 죄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가됨으로써 이사야의 예언처럼 우리는 나음을 얻었고 깨끗함을 얻었다. 나병으로부터 치료받은 그 사람, 혈루증으로부터 완전히 나음을 입었던 그 여인이 바로 나 자신임을 자각할 때 구원의 감격과 감사를 새롭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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