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에덴동산에서의 시험 vs. 광야에서의 시험

최종 수정일: 9월 19일

2025년 9월 9일 저녁 

마태복음 4장은 요한이 머물렀고 활동했던 광야 지역에 예수님이 성령에 인도함을 받아 들어가셨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먼저 요한과 예수님을 비교한다면 요한은 광야에서 메뚜기와 야생꿀을 먹으며 생존했다. 반면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밤낮으로 금식하셨다.

마태는 1절에서 예수님이 광야에 들어가신 목적이 마귀에게 시험을 받기 위함이었다고 기록한다. 마귀는 첫번째 아담을 에덴에서 시험했다. 아담은 금식해본 적도 없었고 주리지도 않았다. 그는 풍성한 에덴의 과일과 음식을 먹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귀의 시험과 유혹에 넘어져 금지된 열매 선악과를 먹음으로 마귀의 말에 순종하여 에덴에서 축출되었다. 그리고 그의 모든 후손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두번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은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과 유혹은 받는다. 그는 사십일이나 금식했고 실제로 매우 굶주려 있었다. 그때 "시험하는 자" "유혹하는 자" 마귀가 예수님께 찾아왔고 먹는 것으로 유혹했다. 에덴에서는 보암직도 하며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것처럼 보였던 선악과로 유혹했다면 광야에서는 전혀 먹을 수 없는 돌을 떡으로 변하도록 명하고 그리고 먹으라고 유혹한다. 게다가 3장 마지막 절에서 하늘로부터 온 소리는 분명히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라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약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이라고 조건을 붙이면서 "이중구속"(double bind) 메세지를 사용해서 유혹한다. 쓴 물을 단 물로 변화시키시며 광야에서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셔서 먹게 하시며 반석이 갈라져서 강같은 물이 흘러나오게 하셨던 하나님의 아들이 맞다면 돌에게 명하여 떡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신적이 능력이 있음을 드러내라는 것이다. 돌을 떡이 되라고 명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을 빙자하여 돌이 떡이 되도록 하라는 마귀의 말을 따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을 듣는 자가 아니라 마귀의 말을 듣는 자가 되는 셈이다. 돌이 떡이 되라고 했는데 떡이 되지 않는다면 마귀는 그것으로 예수님의 신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논박했을 것이다. 

  마태는 예수님이 "주리셨다"(he was hungry)라고 분명히 표현했다. 예수님은 무엇을 먹어도 맛있을 수 밖에 없는 그 시점에 먹는 것에 유혹을 받아 실패하지 않으셨다. 그는 돌을 떡으로 만들지 않겠다도 대답하지 않고 마귀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대답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4절). 그는 육신의 떡이나 양식보다 말씀의 양식에 순종했다. 그는 자신이 이 땅에 내려오셔서 자신의 몸을 영생을 주는 떡으로 오신 자임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신의 몸을 잠시의 배고픔과 갈증으로 인하여 육신의 양식으로 채우는데 급급해서 마귀의 유혹인지 자신의 내면의 배고픔의 욕구인지 구별도 하지 못한 채 돌을 명하여 떡을 만들어 먹는 우를 범하지 않으셨다.

  흥미롭게도 나중에 예수님은 광야에서(빈들에서)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강론하신 후에 저녁 무렵 백성들을 돌려보내시면서 그들을 굶주린 채 보내지 않으셨다. 그들 중에는 사흘길을 걸어서 올 만큼 먼 곳에서 온 자들도 있음을 아셨고 그들의 배고픔을 공감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 아이가 가지고 있던 다섯 개의 보리떡(보리빵)을 가지고 감사기도를 드리셨고 놀랍게도 남자만 오천명 또는 삼천명 이상 먹을 수 있는 놀라운 기적을 적어도 두번 이상 행하셨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의 기도를 들으셨고 기적으로 응답하셨다. 이 기적은 예수님의 행동이 하나님의 선한 뜻과 말씀과 일치된 것이었기 때문에 응답된 기적이었다.

  마귀의 말에 따라 광야에 흩어진 많은 돌들이 다 빵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사역 첫 단추부터 잘못 꿰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먹는 시험과 마시는 시험 앞에서 실패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했고 모세를 원망했고 하나님을 불신했다. 그들은 "과연 여호와께서 광야에서 식탁을 준비하시랴" 라고 말하며 믿지 못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비록 여러 기적들을 체험했지만 그들의 신앙은 여전히 젖먹는 수준에 머물렀던 자들이었고 노예 근성이 빠지지 않은 백성들이었기 때문이다. 40년 동안 광야 생활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에서 내린 "천사들의 양식" 만나를 먹으면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반복적으로 불순종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40일 밤낮 금식하면서 주리신 상태에서도 먹을 것으로 유혹하는 마귀의 말을 따르지 않고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과 말씀에 백퍼센트 순종하는 결정으로 내림으로서 마귀의 시험을 이겨내셨다. 그래서 첫번째 아담이 실패한 이슈에 대하여 두번째 아담으로서 성취하시고 마침표를 찍으셨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된 우리는 먹는 것, 생존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사는 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롬 14:8 참조).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주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전 10:31)는 바울 사도의 권면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 원한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No suffering, no crown

2025년 11월 27일  본문: 마 19:23-30 제목: No Suffering, No Crown 오늘 본문은 오해될 수 있는 말씀을 담고 있다. 대부분의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 헬라어 성경을 보니 "어떤 부자"(a rich man)는 천국에 어렵게(with difficulty) 들어갈 것이라는 것이 23절의 의미임을

 
 
 
반면교사인 부자 청년 이야기

2025년 11월 26일  본문: 마 19:16-22 제목:  반면교사인 부자청년 이야기 오늘 본문은 마태, 마가, 누가 모두 기록한 본문이라는 점에서 중요성이 더하는 본문이다. 세 성경 기자 모두 본문에 등장하는 이 청년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만한 지명도가 있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누가는 이 청년이 "어떤 관리"(a certa

 
 
 
예수님이 안수해주신 어린 아이들

2025년 11월 25일  본문: 마 19:13-15 제목: 예수님이 안수해주신 어린 아이들 오늘 본문은 3절의 짧은 분량이지만 마태, 마가, 누가 모두 이 본문을 다루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마가는 제자들이 아이들을 꾸짖었을 때 예수님이 "노하셨다(he was indignant) "라는 표현을 추가했다. 그리고 "그 어린 아이들은 안고(he took th

 
 
 

댓글


사업자등록번호 : 115-48-01055

kleecounseling@gmail.com

© 2025 by 이관직 상담실. Proudly created with love.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