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정확히 예고하심
- kleecounseling
- 2025년 11월 29일
- 1분 분량
2025년 11월 29일
본문: 마 20: 17-19
제목: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정확하게 예고하심
다윗이 정복해서 세운 도시이자 솔로몬이 세운 성전이 위치했던 도시가 예루살렘이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을 갖고 있다. 살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인사할 때 쓰는 단어 "샬롬"(평화)과 같은 의미의 단어이다. 예수님 당시 디아스포라 유대인(전 세계적으로 흩어진) 남자들은(여자들도 포함) 유월절(무교절), 칠칠절(오순절), 또는 초막절(수장절, 收藏節)에 적어도 한번은 예루살렘을 향한 순례여정에 올랐다. 이것은 신명기 16장 16절에 명시된 율법에 순종하기 위함이었다. "너의[너희]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솔로몬 성전이 세워진 이후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에게 정신적으로, 신앙적으로 지주가 되는 도시였다. 예루살렘 도시와 성전은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기도 했지만 예수님 당시 헤롯 왕이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수십년에 걸쳐서 성전을 재건축했다. 당시 예루살렘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사두개인들로 이루어진 산헤드린 공회가 다스리는 종교적 수도이자 정치적 수도였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부모님과 형제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방문한 에피소드가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 방문의 목적은 절기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공생애 사역 중에도 예수님은 여러 번 예루살렘을 방문했다. 그러나 이번 방문은 의미가 달랐다. 예수님은 이번 예루살렘 방문길이 그의 궁극적인 목적을 성취하는 길임을 이미 아시고 제자들에게 세번째로 그가 당하실 고난과 부활에 대해서 아주 구체적으로 예고하셨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무리들과 구별해서 따로 열두 제자들에게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과 사흘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알려주셨다. 이어지는 본문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은 여리고에서 잠시 머무셨던 것 같다. 여리고를 떠나 예루살렘을 향해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르니라"(20:19)라고 기록된 것을 보면 이 여정에 예수님을 따르는 큰 무리가 동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과 부활하실 것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비밀로 하셨다. 오늘 본문을 마가와 누가도 기록했는데 마가는 흥미롭게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leading the way) 그들이 놀라고(the disciples were astonished)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while those who followed were afraid)"라고 기록했다(막 10:32).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에 대해 말씀하시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놀랐고 무리들은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제자들과 따르는 무리의 사람들은 직감적으로 무엇인가 심상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겠구나라고 느꼈을 수도 있고 예수님의 비장한 얼굴 표정에서 심상하지 않음을 감지했을 지도 모른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과 부활하실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를 잘 알려준다.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것을 알지 못하였더라"(눅 18:34).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세번째로 자신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알려주셨지만 놀랍게도 제자들은 귀가 있어서 듣기는 들었지만 전혀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누가는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라고 기록했다. 부활하신 후에야 이 말씀이 연결이 되고 해석이 되며 믿어졌던 것이다. 뭔가 두렵고 불안했지만 제자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며 기대했던 정치적인 메시야로서의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도 다 "필터링"(filtering)이 되어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세베대의 두 아들들의 어머니가 그들과 함께 와서 예수님에게 요청한 내용과 제자들이 이 사실을 알고 분노했던 것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부활 사건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진 구속 사역이었다. 이 섭리적 계획은 이미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 있었던 계획이었다.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고 임시방편으로 일어난 일도 아니었다. 하나님의 인류를 향하신 마스터플랜 속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 뜻의 비밀(the mystery of his will)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to be put into effect when the times reach their fulfillment) 예정하신 것이니(he purposed in Christ)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according to the plan of him who works out everything in conformity with the purpose of his will)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엡 1:9-11). 십자가 사건과 부활은 인류의 역사가 B.C.와 A.D.로 나뉘어지며 구약과 신약이 구별짓기가 되는 전무후무한 역사적 사건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역사적 사건을 성취하는 도구로 쓰임받은 자들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었다(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포함하여).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자신을 죽이기로 결의할 이들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라고 특정하여 언급하셨다. 그리고 구약의 제사제도를 맡은 대제사장들과 모세의 율법을 연구하며 가르치는 서기관(율법사)들에게 자신이 넘겨질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이 넘겨주는 과정에 쓰임받은 자는 열두 제자들 중의 하나였던 가룟 유다였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예수님을 넘겨주며 죽이기로 결안하였지만 하나님의 큰 그림을 이루는데 쓰여지는 도구들이 된 것이다. 이것은 애굽의 바로 왕이 그의 마음의 완악함으로 인하여 열번이나 약속을 뒤집음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이 온천하에 더 드러나게 하는데 쓰임을 받았던 것과 같다. 그들은 각기 자기 길을 갔지만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그들의 불신앙과 무지함을 통하여 역설적으로 구원 역사를 "단번에"(once for all)성취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마지막 유월절을 앞두고 대제사장들에게는 유월절 어린양으로 넘겨져 영원한 대속제물이 되셨다. 율법사들에게는 구약의 모세 율법의 요구를 죄가 전혀 없으신 의인으로서 대신 성취하심으로써 우리를 율법의 요구 앞에서 자유하게 하시며 해방해주셨다.
이방인들까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에 연결되는 하나님의 섭리를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은 스데반처럼 유대인들에 의해 돌에 맞아서 죽으셨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를 받은 자니라"(신 21:23)라는 율법을 성취하는 방식으로 로마의 처형제도에 의하여 십자가에 달리셨다. 로마의 속국으로 있었던 당시 상황에서 예수님은 로마 총독인 빌라도의 법정에 넘겨졌고 마침내 로마 군병들에 의하여 십자가 형을 당하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였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만국인들이 다 읽을 수 있게 히브리어와 라틴어와 헬라어로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팻말을 붙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쓸 것을 썼다 하니라"(요 19:19-21). 예수님은 단지 유대인들을 위하여 죽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데 참여한 총독 빌라도와 로마군병들이 대표하는 모든 이방인들까지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십자가에서 죽게 된 것은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였다. 심지어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아 가진 것도 구약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는 것이었다고 요한은 기록했다.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seamless)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군인들이 이런 일을 하고"(요 19:23-24, 시 22:18 참조). 예수님은 이방인들이 행할 일을 구체적으로 예고하셨다.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이사야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약 700년 전에 정확하게 예언한 선지자였다. 모든 사람들에게 비밀로 가려져 있던 이사야의 예언이 역사적으로 그대로 일어난 것이다. 오늘날 유대인들의 성경에는 이사야 53장이 빠져 있다고 한다. 그들은 애써 예수님이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야로서 이미 이 땅에 오셔서 대속 사역을 이루셨다는 사실을 부인하며 믿지 않는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은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예정 속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일어난 역사적인 사실임을 이사야의 예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사야 53장에서 몇 절만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3절).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4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도다"(5절).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긱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6절).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니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9절). 그는 이사야의 예언대로 부자 아리마대 요셉이 자신을 위해 파둔 무덤에 안치되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며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요 19:38-42).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역사적인 사건으로만 끝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죄 사함의 해결책이 없이 죽게 되면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될 자신과 연결된 역사적 사건임이 믿어질 때 영적인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리며 예수님을 주(Lord)로 고백하며 섬기며, 영생을 가진 자로서 이 땅에서 살 수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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