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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적인 병 vs. 영혼의 병

2025년 9월 17일 새벽 

마태복음 8장 14-17절은 한 나병환자를 고친 사건과 중풍병으로 고통하던 백부장의 사환을 고친 사건 다음에 이어지는 치유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마태는 이 본문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셨으며 불특정 다수의 귀신들린자들과 병든 자들을 고쳐주셨다고 기록하면서 이사야의 예언을 예수님과 연결짓기 했다.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짋어지셨도다." 유대인 독자들에게 예수님이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임을 재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치유 사역은 예수님의 사역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제자들을 부르셔서 그들에게도 자신이 행하시는 사역을 할 수 있도록 권능을 주셨다고 마태는 기록했다.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면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10:1). 그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파하도록 파송하실 때 치유 사역을 병행할 것을 말씀하셨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7-8).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에 사도행전 역사에서도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을 통해 놀라운 병고침의 역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야고보 사도도 기도를 통해 병든 자들이 나음을 입을 것이라고 기록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 5:14-16). 

  현대 의학의 발달로 신체적인 병과 심리적, 정신적 병을 치료하는 약의 개발과 의료 기기 및 기술의 개발, 그리고 심리학적 이론과 기법들의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전통적으로 교회와 목회자들이 책임을 많이 맡았던 치유 사역이 의사들과 심리치료사들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구제 문제로 갈등이 생겼을 때 일곱 집사에게 위임하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행 6:4)라고 "구별짓기"를 함으로써 핵심적인 사역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의학의 발달로 인하여 목회자들이 전통적으로 해왔던 치유 사역에서 짐과 책임이 훨씬 가벼워진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의료 혜택이 쉽지 않은 선교 현장에서 기도를 통하여 놀라운 치유가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의학적으로 포기한 상태에서도 기도의 능력으로 기적적으로 회복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은사주의 전통에 강한 교회들에서는 치유사역을 중요하게 보는 것도 사실이다. 

  기독교는 현실을 무시하거나 도피하는 종교가 아니다. 신앙인으로서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신앙을 실천하도록 요청하는 종교이다. 그래서 한국에 선교하러온 선교사들이 말씀을 전하면서도 학교와 병원을 세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받으셨을 때 인용하셨던 말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마 4:4)는 말씀이 예수님의 사역의 큰 그림을 보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예수님은 주린 자들을 공감하시며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다. 많은 병자들의 고통을 공감하심으로써 그들의 병을 고쳐주셨다. 장례 현장에서 슬퍼하는 과부의 마음을 공감하시며 그녀의 죽은 아들을 살려주셨다. 슬퍼하는 마리아와 마르다를 위하여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썩는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려주셨다. 그러나 이 모든 치유 사역은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을 성취하며 그가 하늘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드러내는 계시적인 사건이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특히 20세기 미국교회 역사에서 그랬고 한국교회 역사에서도 그랬지만 교회들이 영혼 구원에 사역의 초점을 맞추는 교회들과 사회 봉사와 사회 구원에 초점을 맞추는 교회들로 크게 나뉘어진다. Either ~ or 의 접근보다 both ~ and 의 접근이 필요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영혼 구원에 우선순위를 두는 사역이 성경적이다. 몸의 치유는 잠정적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고쳐주셨던 병자들도 다 죽었다. 부활한 나사로도 죽었다. 이처럼 이 땅에서의 웰빙과 건강은 중요하지만 그것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교회는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교회는 보이는 것에 시선을 두는 공동체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즉 영적인 영역에 시선을 두는 공동체이다. 바울은 로마의 지배를 받았던 에베소 지역에 사는 성도들에게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라고 이 사실을 잘 지적하였다. 예수님께서도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벌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라고 "큰 그림"을 보게 해주셨다. 

  몸과 정신은 건강하지만 영혼이 죽은 상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 땅에 많이 있다. 영혼의 병은 치명적이다. 영원한 사망과 심판으로 이어지게 하는 병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류는 이 병에 걸려서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와 접촉된 사람들은 영혼이 살아나는 "중생"(regeneration)의 기적을 경험한 자들이다.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강이 되어 바다로 흘러가면서 강 좌우에 과실나무가 번성하며 그 잎이 시들지 않고 새로운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보았던 에스겔의 환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예표하는 것이었다(겔 47:1-12 참조). 바울은 에베소서 2장 1절에서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말씀했는데 한 성경학자는 이 본문을 "산 송장이었던 너희"라고 해석하였다. 따라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은 사람은 영혼이 치명적인 병에 걸려 죽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놀라야 한다. 이 사실을 깨닫는 자는 구원의 유일한 치료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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