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분별하는 영성
- kleecounseling
- 11월 8일
- 1분 분량
2025년 11월 8일 새벽
본문: 마 16:1-4
제목: 시대를 분별하는 영성
이관직상담실이 한국 국세청에 사업자등록 승인을 받은지 꼭 두 달 되는 날이다. 그리고 마태복음을 읽고 묵상하며 글을 쓴 지 꼭 두 달 되는 날이다. 그동안 계속 묵상을 글로 쓰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성령님이 도와주심에 감사하다.
오늘 본문에서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함께 예수님을 찾아와 시험하는 장면이 소개된다. 보통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짝이 되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서기관들 대신 사두개인들이 등장한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원래 짝이 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은 부활을 믿었던 반면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 현실주의자였기 때문이다. 부활 신앙에서 관점과 해석이 다른 두 집단이 멍에를 같이 메고 왔다는 점이 아이러니이다. 멍에를 같이 멜 수 있게 했던 공통분모는 그들 모두에게 예수님이 큰 위협이 되었다는데 있었다. 둘 다 유대 사회와 종교에 있어서 엘리트층에 속하는 자들이었고 특히 사두개인들은 정치권력을 갖고 있는 자들이었다. 각자의 유익을 위하여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자들이 또는 적국 관계에 있던 나라가 일시적으로 연대해서 행동하는 경우가 있듯이 이들도 그렇게 행동한 것이다. 이들의 행동은 오늘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신과 일치한다. 각자의 가치를 인정해주면서 서로 판단하지 말고 공통분모를 놓고 연대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칠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신 후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마가단 지경으로 가셨다고 오늘 본문 바로 앞절에 기록되어 있다. 이 문맥으로 볼 때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마가단 지역에서 거리가 먼 예루살렘에서 조사단으로 파견온 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예수님을 조사하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마가도 이 본문을 칠병이어 사건 이후에 일어난 것으로 기록했다 (마가복음에서는 바리새인들만 등장한다).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요구했을 때 마태가 기록하지 않은 예수님의 반응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께서 마음속을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He sighed deeply and said). 이 탄식에서 그들의 완악함과 외식과 어리석음에 대한 예수님의 안타까움과 슬픔과 분노가 느껴진다. 어떤 표적을 설령 보여준다고 할지라도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하는" 영적 무지(無知)가 벗겨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믿기 위해 표적을 구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걸림돌에 넘어지게 해서 군중들 앞에서 수치를 주고 고발할 근거를 찾기 위해서 표적을 구했기 때문이다.
하늘(heaven)로부터 온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예수님은 하늘(sky)을 사용하여 대답하셨다. 앞의 하늘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하늘이라면 뒤의 하늘은 현상적으로 눈에 보이는 하늘을 의미한다. 이들은 눈에 보이는 하늘의 현상은 해석하며 분별할 수 있는 눈을 갖고 있다. 저녁 무렵 하늘이 붉을 때에는 날씨가 좋겠다고 예측하며 아침에 하늘이 붉으면 흐리면 날이 궂겠다(stormy) 라고 예측하는 누적된 경험으로 인한 상식은 갖고 있다. 이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과 경험은 갖고 있으면서도 예수님이 이미 행하신 이적들에 대하여 적어도 소문을 들었으면서도 믿지 않기로 작정한 자들이었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마 15:31)라고 기록된 내용의 큰 무리의 반응과 이들의 반응은 매우 대조적이다. 이들의 반응은 대화할 때 "그렇지요 그렇지만(Yes, but...)"이라고 반응하는 이들의 반응과 비슷하다. 이들에게는 어떤 표적을 보여주어도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도마의 경우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직접 확인하고 믿었다. 그는 이미 택함을 받은 제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이 아니라 마귀에게 속한 자들이었다. 이들의 행동은 사십일 금식하신 예수님에게 찾아와 세가지 시험을 했던 마귀의 모습과 매우 닮았다. 마귀는 비공개적인 광야에서 예수님에게 이적을 행할 것을 요청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행하라고 시험했다. 돌을 떡으로 변화하게 명하라고 시험하고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 세워놓고 뛰어내리라고 시험했다. 표적을 요구한 것이다. 믿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말에 순종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만일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말대로 하늘로부터 오는 어떤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다면 예수님은 그들의 말을 따른 셈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말대로 응하실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명명하시고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라고 대답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셨다. 마가는 예수님이 그들을 떠나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정반대편으로 가셨다고 기록했다. 돼지에게는 진주를 던지지 않는 것이 지혜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사두개인들은 "이중구속"(double-bind)적인 상황에 빠뜨리는 것을 좋아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을 생각이 전혀 없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시편에 나오는데로 악을 행하기를 즐겨하는 자들이었다. 몰래 함정을 만들고 그물을 숨겨두고 걸리면 죽이려는 악인들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겉은 종교인으로서 행세했고 백성들에게 인정받기를 좋아하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은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양의 가죽을 뒤집어 쓴 이리였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마귀는 천사처럼 위장하여 현대인들을 미혹한다. 매우 상식적이며 나이스하게 보이는 행동을 하면서, 매우 과학적인 것처럼 포장하면서, 현대인들에게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Lord)로 믿는 믿음을 잃게 만드는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마치 점점 데워지는 솥단지의 온도를 감지하지 못한 채 삶겨 죽는 개구리처럼 될 수 있다. 우리는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는 영적 지혜와 감수성이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