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 마태와 그의 세리친구들과 식사교제하신 예수님
- kleecounseling
- 9월 21일
- 1분 분량
2025년 9월 20일 토요일 저녁 묵상하며 쓴 글이다.
본문: 마 9:9-13
마태는 본문에서 세관에서 근무하던 자신을 찾아오셔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초청에 바로 응답하여 그의 팔로워가 되었다고 기록했다. 그 부름에 대한 기쁨과 감사의 표현으로 그는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을 자기 집에 초대하고 잔치를 베풀었다.
마태의 이름은 히브리 단어 "마탄"(mattan)과 여호와의 줄임말인 "야"(Yah)의 합성어로 이루어진 이름인데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그의 이름에서도 마태복음에서 소개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복음의 메세지가 발견된다.
사복음서의 기자 중에서 열두 제자에 속했던 제자는 요한과 마태라는 점에서 마가나 누가보다 예수님의 공생애 현장을 직접 목격한 기자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요한은 이 사실을 요한일서 1장 1절에서 잘 표현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직접) 들은 바요 (직접) 눈으로 본 바요 (직접) 자세히 보고 (직접)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예수님이 마태를 제자로 부른 사건은 마가와 누가 모두 기록하였다. 마가는 마태를 "알패오의 아들 레위"라고 좀더 상세하게 표현했다. 누가도 마태라는 이름 대신 "레위"라고 표현했다. 세 복음서를 상호 비교해보면 누가는 마태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표현을 덧붙였다. 누가는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초대된 이 잔치는 "예수를 위한" 잔치였으며 "큰" 잔치였다고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누가와 대조적으로 마태는 이 식사 모임이 "큰 잔치"였다고 쓰지 않고 담백하게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라고만 기록했다.
마태, 마가, 누가의 복음서를 연결하여 종합해보면 마태는 알패오의 아들이었으며 레위라는 본명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로 이루어진 구별된 레위 지파의 이름을 딴 이름과는 달리 당시 동족들로부터 "죄인과 세리," "세리와 창기"가 같이 붙는 명칭이 될 정도로 유대인 동족들로부터 멸시와 조롱을 받았던 세리로서의 삶을 살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여리고에 살았던 세리장 삭개오도 그랬듯이 대부분의 세리들은 로마제국과 동족 유대인들 사이에서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정체성을 갖고 살았다. 그들은 비록 경제적으로는 윤택하게 살았겠지만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에 속한 삶을 살았다. 본명인 레위라는 이름과 세리라는 그의 직업은 잘 어울리지 않았다. 이름으로만 본다면 그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의 옷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마태 스스로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그는 마음에 이상과 현실 사이의 큰 괴리감을 느끼고 있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각 응답할 수 있었던 것도 그와 같은 평소의 괴리감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예수님의 부르심이 없었다면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모두 갈릴리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의 삶을 살다가 무명의 삶으로 인생을 마쳤을 것이다. 마태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리의 삶을 살다가 무명의 삶으로 인생을 종결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일상의 삶에 찾아온 예수님의 부르심 앞에서 그는 주저하지 않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제자가 되는 은총을 입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열두 제자 중에서 베드로와 요한과 더불어 성경의 일부를 기록하는 특별한 은총까지 입은 유명의 삶을 살게 되었다. Matthew 또는 줄여서 Matt라는 이름은 영어권에서 남자 아이 이름을 지을 때 선호하는 이름 중의 하나일 정도로 그의 이름은 일반인들에게도 호감을 주고 있다.
마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다음에 맨먼저 한 일은 큰 잔치를 베풀고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아마도 세금징수와 관련된 업종 사람일 수도 있다)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고 큰 잔치를 베푼 일이었다. 그의 행동은 구약의 엘리사가 엘리야의 부름을 받고 제자가 되면서 열두 겨리나 되는 소들을 데리고 밭을 갈던 농부의 삶을 청산하고 소 두마리를 잡고 소의 기구들을 불살라 고기를 삶아서 동네 사람들에게 잔치를 베풀고 난 다음에 엘리야를 수종하는 제자가 되었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지 않았듯이 세리들과 창기들과 상종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그들과 식탁을 같이 한다는 것은 파격적인 행보였다. 베드로가 고넬뇨의 집에 가서 이방인들과 함께 식탁교제하는 것 만큼이나 바리새인들의 눈에 예수님과 그를 따르던 제자들의 이같은 행보는 파격적이며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직접 질문하는 대신 제자들에게 트집을 잡는 질문을 했다.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라고 묻는 그 질문에는 이미 그들의 정죄감이 서려 있었다. 세리와 죄인들과 식탁교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회문화적으로도 상식인데 어떻게 너희 선생과 너희들은 상식도 없는 행동을 하느냐는 힐문이었던 것이다. 고넬료의 집에서 이방인들과 식탁교제를 함으로써 이방인들과의 바운더리를 뛰어넘었던 베드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안디옥에 머물 때에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식탁교제 하던 자리에 예루살렘에서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당도했을 때 순간적으로 당황한 베드로가 마치 식탁교제를 안했던 것처럼 행동한 일이 있었다. 바나바조차 미혹되어 외식하는 행동을 하다가 베드로가 사도 바울 사도에게 꾸짖음을 당하기도 했다(갈 2:11-14 참조).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유명한 말씀을 하셨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때 있느니라"(12절).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13절).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조차 손가락질하며 비난하며 정죄하는 대상을 열 두 지파의 대표성을 띠는 열 두 사도의 한 사람으로 부르셨다는 사실은 마태의 삶에 놀라운 은총이었다. 예수님은 병든 자, 죄지은 자, 죄인임을 인정하는 자와 연결짓기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는 자는 예수님과 연결되지 않는다.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죄인들에게만 친구가 되신다.
예수님은 어느 바리새인의 식사초대에도 응하셨다. 그 식사 자리에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예수님이 바리새인의 집에 식사하러 오셨음을 알고 찾아와 울며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로 붓는 행동을 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때 시몬이라고 이름하는 그 바리새인은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눅 7:39)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예수님은 그에게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고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고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라고 직면하셨다. 그리고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 7:47)라고 말씀하셨다.
기독교를 비판했다고 알려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의도하지 않게 확인해준 바는 인간의 죄성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에게 의식세계는 일부이며 훨씬 큰 무의식세계의 힘과 역동이 있음을 지적했다. 의식적인 영역에서만 본다면 일부 의인이 혹 있을 수도 있겠지만 무의식세계의 역동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는 성경 말씀은 참으로 진리이다. 전도를 하면 자신은 죄인도 아닌데 죄를 회개하라고 하는 기독교의 가르침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전도를 거부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 자신이 매일 꾸는 꿈의 세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조금만이라고 자각한다면 스스로 의롭다고 여길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과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죄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예수님이 죄인들과 함께 있는 그 자리에 자신도 기꺼이 함께 하겠다고 응답할 것이다. 본문에서 바리새인들은 세리 마태의 집에서 벌인 천국의 큰 잔치에 초대되지도 않았고 그 자리에 함께 앉아 식사하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세리와 죄인과 창기의 식사 자리에 예수님이 계시고 그 자리에 우리도 앉아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뿐이다.
이관직교수, 이관직상담실 kleecounsel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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