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요한의 죽음
- kleecounseling
- 10월 31일
- 1분 분량
2025년 10월 31일 새벽
본문: 마 14:1-12
제목: 세례 요한의 죽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분봉왕 헤롯은 그의 충동성과 소심함, 그리고 의존성이 두드러진다. 율법을 어기고 동생 빌립의 아내를 자기의 아내로 취하는 비도덕성에다가 술김에 헤로디아의 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는 그의 충동적인 행동은 수많은 신하들 앞에서 술김에 왕후를 폐위하는(죽음에 준하는) 충동적인 결정으로 내리고 나중에 후회했고, 기분이 업되었을 때 에스더에게 두번씩이나 "무엇이든지 구하면 왕국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호언장담했던 페르시아 제국의 아하수에로 왕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왕들이 그런 면이 있지만 둘다 연회와 잔치를 좋아하는 왕이었다.
연회 현장에 직접 나타나지 않지만 뒤에서 조종했던 헤로디아는 그 사악함이 마귀를 닮았다. 그녀의 모습은 마귀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지만 뒤에서 사람들의 행동을 조종하거나 영향을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자기 남편 빌립을 버리고 헤롯과 결혼한 모습과 헤롯에게 직언한 세례요한을 백퍼센트 나쁜 대상으로 인식하고 증오하는 모습에서 그녀의 경계성(borderline) 성격장애적 모습이 잘 드러난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와 반사회성 성격장애가 두드러지는 싸이코패스적인 여성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악을 행하는 것을 기뻐하였고 일말의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못하는 여자였다.
헤로디아의 딸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딸이기는 하지만 엄마를 빼어닮은 쌍둥이였다. 엄마의 부탁을 전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소반에 담겨져 온 세례 요한의 머리를 보았을 때 정상적인 아이였다면 울음을 터뜨리며 얼굴을 외면하고 도망쳤을 것이다. 심각한 트라우마를 입어야 할 만큼 충격적인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로디아의 딸은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서 그 소녀에게 주니 그가 자기 어머니에게로 가져가니라"(11절) 말씀처럼 아무런 감정도 없이 행동했다. 아마도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일부가 오히려 목격한 충격적인 장면으로 인하여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증상으로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다가 쟁반에 담긴 요한의 머리를 목격한 것은 성인들에게도 충격을 주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헤롯은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근심할 정도의 양심은 갖고 있었던 사람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이 한 맹세를 철회할 경우에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감내해야 할 공개적인 망신과 수치, 그리고 어렵사리 취했던 아내 헤로디아로부터의 극도의 분노와 비난을 예상했을 때 "이중구속"(double-bind) 상황에 빠졌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근심했다(the king was distressed).
동방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베들레헴 지역에서 태어난 두 살 아래의 남자아이를 모두 죽였던 헤롯 왕과는 다른 헤롯이었지만 둘 다 싸이코패스적이라는 점이 닮았다. 본문의 헤롯도 자기 마음으로는 세례요한을 죽이고 싶었지만 백성들을 두려워해서 죽이지 못했던 것이라는 점에서 그에게 싸이코패스적인 면이 있었다. 그리고 동생 빌립의 아내를 취하여 자기의 아내로 삼은 부분에서도 동생이 겪어야 할 배신감과 충격감에 대해서 공감하지 않고 행동한 면에서 그의 싸이코패스적인 면이 보인다. 헤로디아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근심"하며 갈등하는 기능이 남아 있었다는 점에서 좀 덜 싸이코패스적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삶은 많은 점에서 닮은 점이 있다. 첫째, 둘 다 기적적인 방식으로 잉태되었다. 세례요한은 나이가 많아 임신할 수 없었던 엘리사벳이 그의 늙은 남편 사가랴(스가랴)에서 나타난 천사의 예언대로 임신해서 태어났다. 처녀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했을 때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 그녀가 성령으로 잉태되었음을 알려주었다. 둘째, 둘 다 천사가 그 이름을 지어주었다. 셋째,둘 다 비슷한 젊은 30대 초반의 나이에 죽었다. 세례요한은 옥에서 헤롯에게 목베임으로 죽었고 예수님은 이방인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 형으로 죽었다. 넷째,사람들은 둘 모두를 선지자로 여겼다. 다섯째, 둘 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 마 4:17)라고 동일한 메세지를 선포했다.
요한이 옥에 잡혔을 때 예수님은 고향 나사렛을 떠나 갈릴리 지역에 있던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면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셨다(마 4:12-17 참조). 즉 요한의 사역이 중단되자 곧 예수님의 사역이 이어졌던 것이다. 계주 달리기 메타포가 적절하다. 예수님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사역을 마친 세례요한의 바톤을 이어받아 신약의 첫 선지자로서 삼년의 공생애 사역을 완성하신 것이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세례요한의 죽음은 어이없고 억울한 죽음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서 세례요한의 죽음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라고 그가 말한대로는 그는 역사 무대에서 갑작스럽게 "fade out"된 진리의 횃불을 밝힌 선구자였다. 예수님의 오시는 길을 평탄하게 만들며 사람들의 마음이 옥토가 되도록 준비하는 사명을 완성하고 푯대를 향하여 신실하게 달렸던 위대한 신앙 선배였다.
헤롯의 생일은 세례요한의 기일과 겹친다. 헤롯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뻔 했다고 했던 가룟유다와 같았다. 가룟유다는 은 삼십의 값싼 가격에 자신이 삼년간 따랐던 선생님을 배반하고 팔았다. 헤롯은 충동적인 맹세를 함으로써 헤로디아의 딸의 춤값으로 많은 백성들이 탁월한 선지자로 여겼던 세례 요한을 죽였다. 그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사람 중의 하나였다.
오늘 본문에는 여러 인간상이 그려진다. 옥에 갇혀 있다가 갑작스럽게 어처구니 없이 목이 베여 죽임을 당한 세례요한, 동생의 아내를 취함으로써 십계명을 어긴 것도 모자라, 자신의 생일에 술김에 충동적으로 맹세하고 갈등하고 고민하면서도 결국 악한 행동을 선택한 헤롯, 평소의 악감정을 품고 마귀적이며 살인적이며 싸이코패스적인 마음을 "외현화"(acting out)한 헤로디아, 겉으로는 매혹적인 춤을 추어 청중을 기쁘게 했지만 싸이코패스적인 엄마와 닮은 헤로디아의 딸, 왕의 명령대로 세례요한의 목을 베었던 이름없는 시위대원들, 마지막으로 목이 없는 시신을 수습해서 장사하고 예수님께 찾아와 아뢴 그의 제자들. 이들의 모습이 부분적이지만 내 안에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들의 모습은 나의 내면을 살피며 깨닫게 하는 반면교사의 역할을 한다.
세례요한의 죽음에서 위로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의 부모였던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세례요한이 출생할 당시 이미 나이가 많은 부모였기 때문에 이 당시 아마도 이미 죽은 상태였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그의 부모는 아들의 비참한 죽음 소식을 듣고 고통스러워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는 점이 위로가 된다. 반면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자신의 아들이 십자가 형틀에서 못박혀 죽는 광경을 직접 목격한 트라우마를 겪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제자 요한에게 자기 어머니의 여생을 부탁했다.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라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요 19:26-27). 요한의 죽음은 한 선지자의 억울한 죽음이었지만 예수님의 죽음은 새 언약(new covenant)을 맺는 어린 양의 대속적인 죽음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완전히 구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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