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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품(성격,personality)에 대한 단상

성품(personality)이란 각 사람에게 하나님이 부여하신 기질과 특질을 포함하여 각 사람이 성장 및 발달과정에서 경험했던 의미 있는 사람들과 사건들의 영향으로 빚어진 전인격적인 총체를 의미한다. 성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사람의 가치관, 태도, 말, 대인관계, 행동으로 표현된다. 성품은 하나님의 형상과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에서 연결된다. 지,정, 의로 표현되는 인간만의 고차원적인 기능은 하나님의 속성과 닮은 부분이며 하나님의 형상의 일부이다. 성품은 지, 정, 의의 기능을 포함하는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인간의 내면적인 자질이자 기능이다. 성품은 종종 인격, 인성,성격, 품성, 품격, 품위라는 단어들과 구별없이 사용된다. 성경에서는 이 성품을 주로 "마음"(heart, mind)로 번역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한 사람의 총체적인 인품, 됨됨이, 인격을 의미한다. 마음의 기능을 총괄하는 "몸"은 "머리"(뇌, brain)이다. 뇌세포가 손상을 입게 되거나 기능을 못하면 마음의 기능도 손상을 입는다. 선천적인 자폐증이나 노년기에 주로 나타나는 치매의 경우 뇌세포가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마음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몸과 마음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한자어로 마음 心으로 표현하는데 심리학은 이 마음의 이치와 원리를 규명하는 학문이다.헬라어로 "푸쉬케"(psyche)로 사용된 이 단어를 정신의힉에서는 "정신"(精神)이라는 단어로 주로 사용한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신 첫 인간은 하나님과 의사소통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도록 창조된 하나님의 걸작품(wonderful workmanship)이었다(엡 2:10).  그러나 첫 인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림으로써 인간은 죄인이 되었다. 따라서 아담의 후손은 모태에서부터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존재가 되었다. 죄성을 가진 인간은 해바라기가 해를 향하여 기울어지는 본성을 갖고 있듯이 환경만 주어지면 죄를 짓는 성향(orientation)을 갖고 있다. 그래서 가장 도덕적이며 윤리적으로 보이는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이미 죄성(sinful nature)이 그 사람의 세포 세포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비록 그가 의식적인 차원에서는 선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여도 무의식적인 정신세계에서는 율법이 규정한 죄들을 짓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마음에 간음하였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한 인간은 없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가 없이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성경의 진단(diagnosis) 앞에 전적으로 무력한 존재들이다. 죄인이라는 진단은 받았지만 치료받을 수 있는 치료약이나 처방책이 전혀 없는 모습으로 사는 것이 자연인의 성품을 가진 자의 현실적인 모습이다.자연인의 성품은 아무리 도덕적이며 윤리적이며 심리적으로 건강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죄의 결과인 육체의 죽음과 영원한 심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반은총을 베푸셔서 죄인들이라고 할지라도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필요한 지성과 감정 그리고 의지의 기능과 대인관계 기능이 잘 발달되어 이 땅에서의 삶을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이끄신다. 사회적인 법과 질서, 양심과 법률 및 각종 제도를 통하여 인간의 성품이 병리적으로 치우치는 것을 억제하도록 하신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자연인들과 함께 이 땅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악한 영향을 덜 받도록 하신다. 예를 들면, 소돔 사람들의 성품은 나그네를 환대하기는 커녕 성폭력을 행사하려고 하며 외국인이었던 롯에 대한 평소의 악감정을 드러내며 하나님이 보실 때 의인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악하며 반사회적인 모습이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의로운 롯의 모습을 베드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잘 표현하였다: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tormented)"(벧후 2:7-8).만약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다수가 소돔성에 사는 사람들의 성품을 가진 자들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는 우리는 악한 환경 속에서 날마다 마음에 고문을 당하는 듯한 고통과 씨름하며 살아야 될 것이다.


성경은 죄성을 가지고 출생하고 죽을 때까지 죄성으로부터 자유할 수 없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을 받을 운명에 놓인 인간에게 유일한 처방책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입고 이 땅에 친히 오셔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유효한 그리고 영원히 유효한 속죄제물이 되시며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는 방법이었다. 이 방법은 오랫동안 비밀로 숨겨져 있다가 예수님이 오심으로 그 뜻이 분명하게 드러난 유일한 방법이었다.  죄성을 가진 인간을 의롭다고 칭함을 받게 하시는 십자가의 구속 사건을 자신과 연결짓기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은혜를 덧입는 방법이다. 유월절 사건이 예표하듯이 예수의 피로 씻음 받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넘어가는"(pass over)하는 은혜를 입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접붙임을 받은 모든 자들의 마음에 예수의 영, 즉 성령 하나님이 친히 내주하시며 역사하신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성품은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성령 하나님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성령은 성도를 개별적으로 인도하시며 하나님의 형상의 완벽한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역사하신다.때로는 이 변화가 너무 더디어 변화되고 있는지 회의가 들 정도도 있지만 성경에서 말씀하신대로 성령은 역사하고 계신다. 성령이 역사할 때 각 그리스도인의 성품은 "엣 성품"과 "새 성품"이 싸우는 역동적인 영적 싸움의 현장이 된다. 이 싸움에서 성령께서 친히 도우시며 점진적으로 성화가 일어나는 변화를 겪게 하신다. 이 성화의 과정과 양상은 각 사람의 삶의 역사와 성품에 따라 다르게 일어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성품이 전체적으로 빠른 기간안에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점진적인 변화를 경험한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다 이루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만큼 성품의 변화와 치유가 일어나는 그리스도인은 한명도 없다. 다 미완성의 성품을 가진 채 죽음을 통과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죽음 후에 가게 될 하나님의 나라에서 각 그리스도인의 성품은 노력이나 환경에 의해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아닌 급격한 변화를 은혜로 덧입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화로운 모습에 준할 만큼 영화롭게 변형될 것이다.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인의 성품은 죄를 알지도 못하며 죄를 짓고 싶은 욕구나 충동을 전혀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 날에 모든 성도들은 천국에서 의롭고 아름다고 균형 있는 성품의 기능을 백퍼센트 발휘하게 될 것이다.(이 글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교육국 공과 개발 자료로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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