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거역하는 죄
- kleecounseling
- 10월 20일
- 1분 분량
2025년 10월 19일 주일 새벽
본문: 마태복음 12:22-37
제목: 성령을 거역하는 죄
예수님께 사람들은 눈이 멀고 말 못하면서도 귀신에 들려 삶을 살았던 한 사람을 데려왔다. 마태는 예수님이 그를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라고 기록했다. 이때 서로 다른 반응이 생겼음을 본문에서 알 수 있다. 무리들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라고 반응했다. NIV 성경의 의미가 좀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Could this be the Son of David?"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는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라고 말했다. 동일한 기적 사건을 보고 들으면서도 정반대의 반응이 나온 것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말"을 했다. 흥미롭게도 이 본문은 "귀신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주신 사건이 촉발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사람은 한글 개역개정판의 번역을 따르면 귀신들렸기 때문에 눈이 멀고 말을 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NIV 성경의 번역을 따르면 그가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인데 또한 귀신도 들린 사람이었다.
아무튼 이 사람은 영적으로는 귀신에게 자신의 삶이 통제당하는 사람이었으며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었고 말을 못하는 사람이었다. 마태는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22절) 기록함으로써 예수님이 그의 신체적인 장애를 고쳐주신 것을 강조하였다. 흥미롭게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신 것에 초점을 맞추어 반응했다.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24절).
본문의 귀신들린 사람은 신체적으로 눈이 먼 자였지만 바리새인들은 영적으로 눈 먼 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마주보고 있는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혜로운 말을 하는 자이며 백성들의 종교지도자라고 자처했다. 그러나 실상은 악한 말과 신성모독적인 말을 하는 자였으며 영적 소경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말과 반응이 악한 것임을 지적하신 것이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34-35절). 겉으로는 그들은 귀신에 들렸던 사람과 달리 정상적인 것처럼 행동했고 말도 할 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속았으며 다른 사람들도 속였다. 실상은 그들이 영적으로 마귀와 귀신에게 붙들려 있었으며 마귀와 연결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무의식적으로 그들은 예수님께 "투사"(projection)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하여 반응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그들은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추종하는 자들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28절)라고 말씀하시면서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적하며 신성모독하고 있는 자들임을 직면하셨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몰아 죽이고자 했다.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12:14).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는데도 그들은 애써 그분의 말씀과 치유 사역과 이적을 부인하며 심지어 그분을 귀신들린 자로 몰아세웠던 것이다. 그들은 겉으로는 멀쩡하게 보였지만 속에는 죽은 자들의 뼈가 가득한 회칠한 무덤과 같은 자들이었다.
고침을 받았던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은 귀신에 들려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죄를 반복해서 범하지 않았다. 그는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함으로 인해 죄 지을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최소한 악한 말을 하며 살지 않았다. 말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마태는 흥미롭게도 32-37절에서 "말"에 대하여 부각했다. 차라리 아예 말하지 못했던 그 사람이 말 잘하는 바리새인들보다 훨씬 나았다. 바리새인들은 마음에 쌓여있던 악이 그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와 신성모독적인 그들의 말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들의 말은 용서를 받을 수 없는 말이라고 예수님은 경고하셨다. 왜냐하면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행하신 예수님의 이적에 대하여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24절)라고 "말"로 "성령을 거역"했기(spoke against the Holy Spirit) 때문이다. 선한 열매를 보면 항상 파괴적인 일만 행하는 마귀가 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영적으로 소경이었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를 애써 부인했다. 실상 그들은 아담과 하와를 죄짓게 했던 뱀의 후손이었던 것이며 사탄을 추종하는 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독사의 자식"이라고 그들의 정체를 드러내셨다.
본문 마지막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그들이 한 "말"로 인하여 심판 날에 심문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라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36-37절). 이 말씀은 예수님의 구속 사역 없이도 우리의 말로 인하여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의미로 하신 것이 아님을 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알 수 있다.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33절)라고 말씀하신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열매를 보면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거역하며 성령을 훼방하는 말을 하는 자들은 설령 그들 자신이 의식을 못한다고 할지라도 사탄에게 속한 자들이며 "독사의 자식"이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경고하셨다.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31-32절).
성령훼방죄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해 가끔 실족하는 이들이 있다. 혹시라도 자신이 성령을 훼방하는 죄를 저지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강박적으로 드는 사람은 신경증적인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심리적으로 과민하고 취약해서 성경 전체의 맥락을 염두에 두지 않고 지엽적인 것에 강박적인 사고 작용이 일어나 내적 고통을 겪는 것이다. 이런 이들은 성령을 훼방하는 죄를 지으라고 해도 짓지 못한다. 혹시라도 이런 불안과 두려움과 씨름하는 이가 있다면 구원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라는 성경적인 진리를 붙들고 강박적인 생각에 대해서 서서히 둔감하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령을 훼방하는 자들은 마음이 완악하고 강퍅하고 자기중심적인 자들인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마귀를 닮았다. 하나님은 구원 경륜 속에서 마귀는 용서하지 않으시기로 작정하셨다. 마귀에게 속아서 마귀와 닮은 마음을 가지고 행동하는 자들은 성령을 훼방하기까지 한다. 참소하며 자기가 옳다고 고집한다. 이런 자들은 소망이 없다. 그들은 그들이 참소하며 신성모독적인 말까지 한 그들의 모든 말에 대해서 심판 날에 심문을 받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총을 경험한 사람도 신앙적으로 넘어지며 쓰러질 수 있다. 베드로의 경우에도 실족하여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하며 저주까지 했지만 그는 용서함을 받았고 사도로 계속 쓰임을 받았다. 바울의 경우에도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스데반을 돌로 쳐죽이는 현장에도 동참했던 자였지만 회심하여 기독교 역사에게 가장 귀하게 쓰임을 받는 자가 되었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며 "예수 안에" 거하는 자들은 참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들이어서 좋은 포도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 이들은 쓴 포도, 들포도를 맺지 않는다.
우리의 입이 말을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것이다.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것이다.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은총이다. 눈과 입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말을 하며 행동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입을 통하여 온갖 악한 말을 하며 힘을 빼앗는 사람은 마귀에게 속한 자임을 자각해야 회개하고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 날에 그들이 한 저주스러운 말들과 공격적인 언사들과 신성모독적인 말들에 대하여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3계명에 대해서 현대인들은 특히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욕할 때 "Jesus"라고 내뱉는 것은 신성모독적인 말이다.
야고보 사도는 믿는 자들도 말에 대하여 신중하며 조심해야 할 것을 교훈하였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 1:19);"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약 3: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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