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갈대, 꺼져가는 심지
- kleecounseling
- 10월 20일
- 1분 분량
2025년 10월 18일 토요일 오전
본문: 마태복음 12장 15-21절
제목: 상한 갈대, 꺼져가는 심지
2박 3일간의 휴가 시간을 가지고 어제 귀가했다. 하루에 거의 11시간을 드라이브 하는 강행군 코스였다. 버지니아 주에서 출발해서 메릴랜드, 웨스트버지니아, 펜실베니아, 뉴욕, 매사츄세츠, 커넥티컷 주를 통과하여 미국 동부에서 제일 윗쪽에 위치한 주 버몬트 주에 위치한 유명한 마을 Stowe까지 드라이브하는 여정이었다. 특히 버몬트 주는 산과 계곡과 호수가 뛰엄뛰엄 위치한 예술품 같은 오래 된 집들과 농장들과 어우러져 멋진 가을 풍경을 선사해주었다. 9월말로 교회 사역으로부터 공식 은퇴한 후에 아내와 나에게 의미있는 휴가 시간이자 하나님의 걸작품인 자연을 마음껏 누리는 귀한 시간이었다.
오늘 본문은 휴가 중에 이미 묵상했던 본문이지만 글로 적어보니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글로 전개가 되었다. 마태는 안식일에 한쪽 손이 마른 사람을 고쳐주신 사건을 기록한 후에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많은 무리 중에서 병든 자들을 다 고쳐주신 후에 그들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드러내지 말라고 경고하셨다는 말씀을 기록한 후에(15-16절) 구약 이사야의 메시야 예언을 간접 인용하였다(18-21절).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수신자들에게 예수님이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메시야이심을 부각하고자 하는 마태의 의도가 이 본문에서도 드러난다.
이사야 42장 1-4절을 인용한 본문 18-21절에서 두 가지 메타포가 특징적이다. 이 두 메타포는 사실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다.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는 소망이 없음을 의미하는 메타포이다. 이것은 이사야의 문맥에서는 일차적으로 멸망을 앞두고 있는 유다 왕국의 모습을 상징하는 이미지였다. 말기의 유다 왕국의 모습은 마치 말기 암환자처럼 소망이 거의 없는 모습이었다. 또한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게 될 애굽도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소망 없는 나라였다. 유다 왕국은 어리석게도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찾는 대신 상한 갈대와 같은 애굽이 그들을 구원해줄 수 있는 강국이라고 생각해서 애굽에게 소망을 두었다. 심지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유다가 멸망했을 때 일부 살아남은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그들에게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경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고 그곳으로 이주했다. 애굽이 안전한 나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소망은 헛된 소망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예루살렘을 벌한 것 같이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벌하리니 애굽 땅에 들어가서 거기에 머물러 살려는 유다의 남은 자 중에 피하거나 살아 남아 소원대로 돌아와서 살고자 하여 유다 땅에 돌아올 자가 없을 것이라 도망치는 자들 외에는 돌아올 자가 없으리라 (none will return except a few fugitives) 하셨느니라"(렘 44:13-14). "무릇 애굽으로 들어가서 거기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는 모든 사람은 이와 같이 되리니 곧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서 죽을 것인즉 내가 그들에게 내리는 재난을 벗어나서 남을 자 없으리라"(렘 42:17). 이처럼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는 소망이 없는 유다와 애굽을 상징하는 메타포였다.
마태복음 12장의 문맥에서의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는 한쪽 손이 마른 사람을 포함한 예수님 당시의 많은 병자들을 의미했다. 더 크게 적용한다면 영적으로 치명적인 병으로 죽어가고 있는 모든 인류를 포함하여 의미한다. 설령 육신적인 병으로부터 고침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영적인 병에서 고침을 받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처럼 소망이 없는 자이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병든 자, 귀신들린 자, 세리와 죄인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고 공감하거나 긍휼히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상한 갈대를 그 마저 꺾어버리거나 꺼져가는 심지를 마저 꺼버리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안식일에 병을 고침을 받은 자나 눈을 뜨게 된 자나 중풍병에서 나음을 입어 자리를 들고 걸어간 자에게 안식일 규례로 그들을 정죄할 줄만 알았다. 그들은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가 회복되는 것을 보고 기뻐하거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붙드시며(uphold) 사랑하시며 기뻐하신 "종"(servant)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신 분이었다. 그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말다툼하거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모인 저자 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이거나 주목받기 위해 병을 고치신 후에 자랑하지 않으셨다. 그는 오히려 병을 고쳐주신 것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거나 알리지 말라고 고침을 받은 자들에게 경고하셨다.
마태는 유대인들 뿐 아니라 이방 나라들과 이방인들을 포함하는 모든 사람들이 유일하게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영적 치유자는 예수 그리스도뿐이라고 역설한다. 예수의 이름은 능력이 있다. "예수 안에서"는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도 소망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회복과 부활의 소망이 약속되어 있다.
새로운 약속, 즉 새로운 언약(신약)의 "主"가 되시는 예수님이 병자들을 향해 가지셨던 마음과 태도를 가지고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에도 소망을 견지할 수 있다. 예수님의 이같은 마음을 품는 목회적인 상담사가 되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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