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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신앙 

2025년 12월 10일 

본문: 마 22:23-33

제목: 부활 신앙


바리새인들과 헤롯당 사람들이 물러가자 "당일에" 사두개인들이 찾아와서 예수님께 질문한다. 이들도 예수님을 올무에 빠뜨려 고발하고 죽이려는 빌미를 찾기 위한 악한 의도로 찾아온 것이다.


사두개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마태는 그들의 특징에 대해서 "부활이 없다라고 말하는 자"라고 밝힌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며 믿는 자들이었다. 예수님께 질문할 때에도 모세의 율법을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했다. 바리새인들은 부활이 있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은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기가 힘든 종교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싫어하고 배척하는 일에는 동업자들처럼 행동했다. 사두개인들은 오늘날로 말하자면 현세적인 종교인이자 실증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70인으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회의 멤버들로서도 활동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과 함께 산헤드린 공회를 주도했다. 사도바울은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방문했을 때 바울을 죽이려는 무리의 소동으로 인하여 로마 천부장에게 고발을 당해서 산헤드린 공회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상황에서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 사이에 분쟁을 의도적으로 유발해서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바울이 그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어지니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행 23:6-8).


사두개인들의 질문은 모순적이었다. 그들이 믿지 않는 부활의 상황을 상정하고 예수님께 질문했기 때문이다. 부활이 없으면 일곱 형제와 결혼했던 여자가 부활 때에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가 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모순적인 질문을 던지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아니면 아마도 "당신도 믿는 부활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때 이 여자의 남편은 누가 될 것인가라는 의미로 물었을 수도 있다. 


예수님의 첫마디는 사두개인들의 정체를 드러내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의 경우에는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사두개인들에게는 "너희들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른다"라고 직면하셨다. 모세의 율법에 정통하며 연구하는 그들에게 성경을 모른다고 직면하신 것이다. 그들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창세기 1장 1절을 기록한 모세의 글을 믿지 않은 셈이다.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제대로 몰랐으며 제대로 믿지 않았다.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하는 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율법주의자들이었지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제대로 믿는 자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은 했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며 죽은 자들을 능히 살리시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부활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었다. 죽으면 그냥 흙으로 돌아가며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에스겔 선지자가 보았던 환상을 기록한 에스겔서를 읽어본 적도 없는 자들처럼 사는 자들이었다. 읽기는 읽어도 자기들의 머리로 해석하고 믿지 않은 자들이었다. 골짜기에 심히 많은 뼈들이 있었고 아주 말라버린 뼈들을 환상으로 보여주시고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겔 37:3)라고 물으셨다. 에스겔은 이 때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때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 뼈들에게 대언하도록 명하셨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라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겔 37:4-6). 하나님은 마른 뼈들처럼 전혀 살아날 가능성이 전혀 없었던 이스라엘 족속들이 바벨론제국에서 70년 포로생활을 한 후에 기적처럼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하셨고 부활시키셨다. 그뿐만 아니라 약 2천년 동안 나라 없이 전세계에 흩어져 살았던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이라는 독립국가를 부활시키신 역사적인 사실에서도 부활을 예표하는 기적을 보여주셨다. 엘리사 선지자를 통하여 죽은 아이를 살리신 사건이 구약에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은 나인성 과부의 아들의 장례 행렬을 멈추시고 그를 살려내셨다. 그리고 회당장 야이로의 열두살 난 딸을 죽음에서 살리셨다. 그리고 죽은지 나흘이나 되고 무덤에 있던 나사로를 "나사로야 나오너라"라는 말씀으로 살려내셨다. 온 인류의 부활을 예표하는 이와 같은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소식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두개인들도 여전히 자신들의 관념을 고집하고 견지했다. 그리고 부활을 믿지 않으면서도 부활을 전제하고 예수님을 올무에 빠뜨리려는 질문을 고안해서 찾아온 것이다.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에게 그들이 들어본 적도 없는 대답을 하셨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30절). 천국은 이 땅에서의 질서와는 다른 질서가 있는 나라임을 말씀하셨다. 거기에는 더 이상 가족이라는 질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와 자녀, 형제와 자매, 남편과 아내, 상속자와 후손이라는 관계의 질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질서의 나라라고 말씀하셨다. 이미 예수님은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라고 질문하시고 제자들을 가리켜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애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마 12:48, 49-50)라고 이 사실을 밝히셨다. 사두개인들은 이 말씀을 듣고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천국은 더 이상 죽음도 없고 부활 사건 이후에 또 다른 부활 사건이 일어날 필요가 없는 나라이다. 영원하신 하나님과 연결된 백성으로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나라이다.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에게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모세를 부르시며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라고 말씀하신 그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느냐고 반문하셨다. 애굽에서 수백년 동안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마침내 기적적으로 구원해내셔서 독립된 나라를 이루도록 하시는 사명을 모세에게 주시면서 하나님은 자신을 언약을 지키시며 말씀을 지키시는 분으로 계시하신 것이다. 이미 나이가 많은 상태에서 자식을 가질 수 없었던 사라에게 아들 이삭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때 아브라함도 사라도 믿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대로 이삭이 태어나게 하셨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청소년기에 있었을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을 때 그가 가졌던 믿음에 대해서 히브리서 저자는 "부활의 믿음"이었다고 밝혔다.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데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9). 


예수님은 이어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32절). 변화산에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는 환영(幻影)으로 나타난 인물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살아있는 자들로서 예수님에게 나타나 대화를 나눈 것이다. 특히 엘리야는 살아 있는 상태에서 불말과 불수레를 타고 하늘로 승천했고 칠팔백년이 지나서 변화산에 살아 있는 자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구약의 신앙인들과 신약의 신앙인들은 몸은 죽어서 땅에 묻혔지만 몸의 부활을 기다리며 산 영으로 하나님과 함께 살아 있음을 믿을 수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영생의 확실성을 보여주는 증인들이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5장 전체를 부활에 대해서 논증하는데 사용했다. 고린도교회 안에도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2-19). 인간의 삶이 이 세상의 삶으로 끝이라고 한다면 모든 인간의 삶은 참으로 헛되며 불쌍한 것이다. 더우기 부활도 없고 영생도 없는데 있다는 망상을 갖고 산다면 더욱 불쌍한 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기 때문에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체험이 그를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는데 앞장 섰던 삶에서 완전히 돌이키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로 쓰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던 바울의 삶은 부활의 확실성을 논증하는 한 예이다. 바울은 부활과 그 영광에 대해서 고린도전서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잘 표현했다.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고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고전 15:38-44). 바울은 우리가 부활 신앙으로 무장하고 살아갈 것을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담대하게 살 수 있다. 부활 신앙이 없이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자들은 사실은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누리고 산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라고 고백한 솔로몬의 고백처럼 헛된 삶을 산 불쌍한 자들이라고 성경은 진단한다.


같은 내용을 기록한 누가는 마태복음에서는 언급되지 않은 말씀을 더 언급했다.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눅 20:34-36). 그리고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의 배경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 칭하였나니"(눅 20:37). 누가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서기관들 중의 일부가 "선생님 잘 말씀하셨나이다(Well said, teacher!)"(눅 20:39)라고 반응한 것을 기록했다. 이 서기관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에게 잘 논박하시는 예수님의 말에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들의 반응은 일부의 서기관들 중에는 예수님께 돌아온 자들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예루살렘 교회의 구성원 중에 제사장들의 무리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이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 6:7). 다수의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사두개인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을 배척했지만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과 같은 소수의 바리새인과 지도자들은 천국에 들어가는 은총을 입었던 것이다. 


오늘 본문은 과학주의와 실증주의와 현실주의에 물들어 있는 현대인들에게 도전을 주는 말씀이다. 크리스천들도 예외가 아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의 시선을 보이는 것에 고정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 보이지 않는 나라에 고정하라는 도전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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