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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산에서 얼굴이 해처럼 빛나게 변형된 예수님

2025년 11월 12일 새벽 

본문: 마 16:27-17:8

제목: 변화산에서 얼굴이 해처럼 빛나게 변형된 예수님


예수님은 자신이 받으실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16장 21절에서 언급하신 다음 27절에서 "인자의 아버지의 영광"을 언급하셨다. 그리고 엿새 후에 예수님은 세 제자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다. 마태복음 전체를 통해 볼 때 16장 13절부터 17장 13절까지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부활을 계시하시는 내용이 분명하게 드러냄으로써 전주곡(prelude)과 같은 역할을 한다.


변화산 사건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세 제자들이 확실하게 목격했던 사건이다. 변화산에 나타난 구약의 대표적인 인물인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과 더불어 그의 십자가 고난에 대해서 대화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때 예수님은 해보다 더 밝게 빛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일시적이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처럼 변화한 것이다. 사도요한이 요한계시록에서 묘사한 예수님의 모습이 변화산에서의 모습과 연결된다.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계 1:14-16).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처럼 되었다  (계 1:17). 예수님은 사도 요한에게 직접 말씀해주셨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계 1:17-18). 사도 요한의 반응처럼 세 제자들도 예수님의 변형된 모습을 보고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을 들었을 때 땅바닥에 엎드러져서 거의 죽은 자처럼 되는 반응을 했을 것이다.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마 17:6). 세 제자들은 마치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이 보이는 현상처럼 좋은 의미에서 놀람과 충격으로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버렸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천국에 있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면서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라는 말을 했다. 마가는 그의 상태를 잘 묘사했다.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막 9:6). 


세 제자들은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 앞에서 왕권을 가진 자의 모습으로 변화된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두 세 사람의 증인이 있을 때 그것은 확실한 사건으로 인정받는데 이 변화산 사건은 몰래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세 명의 제자들이 직접 목격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예수님의 핵심 제자였던 세 제자는 두 눈으로 모두 보았고 두 귀로 모두 들었던 증인이 되었다. 특히 베드로는 나중에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기 전에 이 변화산 사건이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체험하는데 중요한 사건이 되었음을 베드로후서에서 잘 기록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벧후 1:16-17).  


베드로는 이 높은 산을 "거룩한 산"이라고 불렀다. 하나님이 임재하는 모든 산은 거룩한 산이 된다. 그럼에보 불구하고 이 부분을 쓰면서 이 높은 변화산이 시내산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모세가 처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하도록 사명을 받은 장소가 "하나님의 산 호렙"이었다 (출 3:1). 그는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거기에서 듣고 사명을 받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삼개월이 되던 날에 도착한 곳이 시내 광야였고 백성들은 시내 산 앞에서 장막을 쳤다. 그리고 모세는 혼자 시내산에 올라가서 사십일간 금식하면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십계명을 받았다. 엘리야가 완전히 탈진했을 때 천사가 공급해준 음식을 먹고 사십주 사십야를 걸어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산이 "하나님의 산 호렙"이었다. 호렙 산과 시내산은 같은 같은 산을 다르게 호칭한 것이다. 모세와 엘리야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교제했던 그 산에 예수님이 제자 세명과 함께 올라가셨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이 거룩한 산에서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확실하게 자신의 사명을 재확인받으며 왕권을 가진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되셨다.  


예수님의 변형된 모습은 얼굴이 해 같이 빛난 모습이었으며 입고 있던 옷이 빛과 같이 흰 모습이었다. 그의 온 몸은 하늘의 영광의 광채가 빛났다. 해처럼 밝은 빛이어서 그 영광을 육안으로 바로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모세의 경우에도 자신은 인식하지 못했지만 시내산 아래에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에 빛이 나서 백성들을 위하여 한동안 수건으로 얼굴을 가려야 했다. 하나님과 함께 한 기간동안 경험했던 하나님의 영광이 그의 몸에 스며들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영광의 광채는 점점 사라졌다. 하나님의 영광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모세의 광채는 "잠정적인 대상 이미지"로서 서서히 사라져야 했기 때문이다. 요한은 모세와 대조적으로 영원히 빛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를 다음과 같이 잘 기록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세 제자들은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대화하는 모습을 직관하는 은혜를 입었다. 모세는 율법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 생활 40년 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했던 목자였다. 그러나 그는 가나안에 입성하지 못했다. 그는 율법의 초등교사로서의 역할을 표상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는 제사장, 왕, 그리고 선지자로서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서 중보자의 역할을 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구약의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와 예수님을 연결짓기하며 구별짓기 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런데 이 죽은 모세가 놀랍게도 이 변화산에 살아있는 존재로 나타난 것이다. 모세와 함께 나타난 엘리야는 아합왕 시대에 바알 종교가 극성을 부렸을 때 사역했던 선지자로서 죽음을 보지 않고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승천한 구약의 대표적인 선지자였다. 그는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하늘나라로 승천한 구약의 두 인물 중의 하나였다(에녹이 그 중의 하나이다). 모세는 죽었지만 살아서 나타났고 엘리야는 산 채로 승천했는데 여전히 살아서 변화산에 나타난 것이다. 


구약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는 4장 마지막 부분에서 메시야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 4:5). 말라기가 예언한 그 엘리야가 세례 요한이었음을 오늘 본문에 이어 나오는 12-13절에서 예수님이 밝히 드러내셨다."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엘리야와 세례 요한이 관계가 있고 세례 요한은 고난을 받았다는 점에서 예수님과 관계가 있다. 세례 요한은 율법대로 헤롯 왕에게 직면했다가 억울하게 목베임을 당했고 죽었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시기 위해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 의하여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는 점에서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요한과 구별된다.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16장 27절과 28절을 연결해서 해석하면 27절에서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대로 갚으리라"는 말씀이 세상 끝에 임할 예수님의 심판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28절,"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는 말씀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오래 전에 이 본문을 읽었을 때 28절의 경우 예수님이 곧 재림하실 것을 제자들에게 예언하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이 틀린 것이 아닌가 라고 여겨져 예수님의 이 말씀의 의미가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실제 초대 교회 성도들과 바울도 예수님의 재림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임박성을 믿었고 그래서 어떤 고난 중에도 견딜 수 있는 소망을 갖고 살았다. 바울의 경우 예를 든다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결혼에 대한 권면을 하면서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그도 인식하고 살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고전 7:26);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니이라"(고전 7:29-30).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은 완전히 다르다. 베드로 사도가 이 사실을 잘 지적했다. 하나님의 시간에는 천년이 하루와 같고 하루가 천년과 같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8-9). 그는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라고 덧붙였다(벧후 3:10). 우리에게는 더디게 여겨지는 시간이지만 하나님에게는 잠깐의 시간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신 이후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다. 예수님의 초림이 있기까지 선지자들의 활동이 없었던 약 400여년의 중간기 시기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약속한 엘리야와 메시야를 기다리는데 매우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미국의 역사보다 훨씬 긴 세월 동안 유다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기다려야 했다. 마침내 전혀 예기치 않은 시간에 예수님은 역사 세계에 처녀의 몸에서 태아의 모습으로 오셨고 기한이 차서 탄생하시고 마침내 구속사역을 이루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 승천 사건도 몰래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목격하는 현장에서 승천하셨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9-11).


27절과 28절을 구별해서 해석하면 인자가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불과 엿새 후에 일어난 변화산 사건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데 무리가 없다. 마가는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고 기록했다. 마태는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coming in his kingdom)이라고 기록한 것을 마가는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that the kingdom of God has come with power)이라고 기록했다(막 9:1).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대화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계시적인 소리가 임한 것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28절을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보다는 현재적인 하나님 나라의 의미로 보면 28절이 이어지는 변화산 사건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임이 분명해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권위있게 여긴 모세와 엘리야가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로 나타나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대속적인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광 중에 왕좌에 오르시는 대관식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이 온 산을 덮었던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이 회막을 덮고 구름기둥이 광야 생활을 하는 온 이스라엘 백성을 덮음으로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드러낸 것처럼 오늘 본문에서도 홀연히 나타난 빛난 구름이 그 현장에 있던 모두를 덮었다.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5절).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 중에 임한 것이다. 구름 속에서 들린 소리는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요단강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로부터 들려온 말씀과 매우 비슷하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6-17). 예수님이 세례요한(엘리야)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임한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을 고난당하실 메시야로서 "공적으로" 임명하셨다면 오늘 본문에서 성부 하나님은 모세와 엘리야 앞에서 구름 속에서 장차 고난당하시고 부활의 영광을 누리실 메시야 되심을 좀더 "사적으로" 세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재확인하셨다고 이해할 수 있다. 


제자들이 정신을 차리고 눈을 들고 보았을 때에는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의 영광으로 해처럼 밝게 빛났던 예수님의 얼굴도 보통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모세도 엘리야도 모두 "사라졌다"(faded out). 제자들은 잠시 천상에 올라가서 그 영광을 미리 맛보는 은혜를 누렸고 그들은 그 이야기를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까지 마음에 비밀로 간직해야 했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9절). 제자들이 경험한 것은 집단 히스테리 현상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일시적인 개인의 정신병적 환각 경험도 아니었다. 마약과 같은 약물에 의한 환각 경험도 아니었다. 바울이 경험했던 삼층천 경험과 유사한 신앙체험이었다. 찬송가 438장 가사가 오늘 본문과 연결된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 속에 이뤄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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