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는 신비
- kleecounseling
- 2025년 12월 9일
- 1분 분량
2025년 12월 7일
본문: 마 21:33-46
제목: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된 신비
예수님은 성전에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또다른 비유로 말씀하셨다 (누가는 백성들도 듣고 있었다고 기록했다, 눅 20:9 참조). 이번에도 포도원을 사용한 비유였다. 오늘 본문을 읽으며 포도원은 에덴 동산과 이스라엘을 비유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주인이 직접 포도원을 만들고 포도즙을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까지 짓고 울타리를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를 준 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온 세상을 만드시고 그 속에 에덴 동산을 따로 구별하여 만드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관리하도록 사명을 주시고 그들과 교제하셨던 것을 연상하게 한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금지한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대신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서 죄를 범하고 마침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남으로써 실낙원을 했다.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린 것이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인류는 하나님이 만든 에덴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언약을 맺으시고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비가 될 것이라고 약속해주셨다. 그의 씨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에덴 동산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에덴 동산과 포도원의 모델하우스로 선택하신 것이 이스라엘 백성이며 이스라엘 왕국이었다. 안타깝게도 북이스라엘 왕국은 변질된 포도원으로 전락했고 예루살렘 성전 제사와 상관없는 혼합적인 종교가 행해지는 나라로 유지되다가 결국 앗수르에게 멸망했다. 남유다 왕국은 성전 제사는 유지되었고 다윗의 자손이 왕으로 이어졌지만 역시 우상숭배로 인하여 바벨론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유다왕국의 모습을 이사야 선지자는 포도원으로 잘 비유했다.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랬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사 5:1-3)."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악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사 5:5-7). 예수님이 오늘 본문에서 포도원 비유를 말씀하셨을 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포함한 무리들은 이사야 5장의 말씀을 기억했을지도 모른다.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포도원을 세로 경작하는 책임을 맡았던 농부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자 비유를 들었던 종교지도자들을 의미했다. 보냄을 받은 종들은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을 의미했다. 농부들은 종들을 하나는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도 쳤다 (마가는 주인이 한명씩 세번 보낸 것으로 표현했다). 그들이 그렇게 대우한 것은 주인의 뜻을 적극적으로 거역하며 불순종하고 자신들이 주인이 되고자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보냄을 받은 주인의 아들은 예수님을 의미했다. 농부들은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라고 모의하고 아들을 포도원 밖에 내쫓고 죽였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곧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질 자신의 십자가 고난과 죽으심이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이루어질 것은 예언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엇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42절)라고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무리들에게 질문하셨다. 예수님은 건축하는 사람들이 쓸모없는 돌이라고 버린 돌처럼 그들에게 취급받으셨다. 건축자들이 기대하고 원하는 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제사장들을 비롯하여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메시야의 이미지와 예수님의 이미지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했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그러나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었으며 하나님의 신비한 구원의 섭리였다. 그 버려진 돌이 성전의 모퉁이 머릿돌이 되도록 섭리하신 것이다. 모퉁이 머릿돌의 의미에 대해서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이미 예언했고 그 예언대로 예수님은 머릿돌이 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will never be stricken with panic)" (사 28: 16). "모퉁잇돌이 그에게서, 말뚝이 그에게서, 싸우는 활이 그에게서, 권세 잡은 자가 다 일제히 그에게서 나와서 싸울 때에 용사 같이 거리의 진흙 중에 원수를 밟을 것이라"(슥 10:4-5).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장로들과 서기관들과 제사장들 앞에서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9-12)라고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연결해서 담대히 선포한 사실이 기록되었다. 사도 바울은 머릿돌이 되신 예수님과 성도들과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잘 표현하였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셧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9-22). 베드로전서에서 베드로는 모퉁잇돌이 되신 예수님을 언급했다.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which is also what they were destined for)" (벧전 2:6-8). 이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거의 그대로 인용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눈에 보이지 않는 새로운 성전이 세워지고 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어 그 돌과 "산 돌들"(living stones)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는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담과 하와가 잃어버렸던 에덴 동산보다 더 좋은 하나님의 나라의 친백성으로 삼으시고 그 나라의 백성들을 오늘도 부르고 계신다. 이 하나님의 구원 섭리의 신비를 바울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요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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