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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의 백부장 vs. 나아만 장군

2025년 9월 16일 저녁 

마태는 산상보훈 이후에 본격적으로 사역이 시작된 예수님에게 맨 먼저 찾아온 인물로 주변인이었던 한 나병환자와 어느 백부장을 등장시켰다. 같은 사건을 기록한 누가는 유대인들을 지배하고 있는 로마가 파견한 군인이었던 이 백부장이 유대교에 대해서 호의적인 이방인이었음을 언급했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눅 7:5). 심지어 그의 부탁을 받은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이 그를 옹호하며 심부름을 자청할 정도로 그는 자기가 관활하는 지역의 유대인 백성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로마군인이었다. 그는 아마도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또다른 로마 백부장 고넬료처럼 유대교를 믿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유대 지역에 파견받아 근무하는 동안 여호와 하나님 신앙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였다. 

  마태는 동일한 사건을 기록한 누가와 달리 "한 백부장"(마 8:5)이 예수님을 직접 찾아와 대화를 나눈 것처럼 기록했다.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이르되." 누가는 이 백부장과 예수님 사이에서 백부장이 보낸 장로들이 백부장의 말을 전했다고 정황을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마태는 세부적인 상황을 언급하는 대신 백부장의 신앙고백에 초점을 맞추어 기록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정황을 미루어 볼 때 백부장은 직접 예수님을 만난 적도 없고 큰 무리 속에 섞여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접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으로만 듣고도 예수님께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라는 놀라운 신앙고백을 하였다. 마태는 그의 신앙고백이 예수님을 놀라게 했다고 기록했다. 예수님은 이 백부장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중요한 말씀을 하실 때 사용한 표현인,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표현을 하시면서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10절)라고 그의 믿음을 칭찬하셨다.

  이 백부장은 엘리사 시대에 아람의 최고 사령관이었던 나아만 장군의 믿음보다 훨씬 큰 믿음을 가진 자였다. 나아만은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 여자 아이의 말을 듣고 그의 나병을 치유함 받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직접 엘리사를 찾아왔다. 그러나 그가 엘리사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가 기대했던 것과 달리 엘리사가 나와서 그를 환영하지도 않고 자신의 환부 위에 손이라도 흔들거나 만지면서 고쳐주는 "치유 의식"을 행하기는 커녕 사환을 보내어 "요단강에 가서 강물에 일곱 번 몸을 잠그라"는 말을 전했을 때 그는 격노하며 고국으로 되돌아가려고 했다. 그는 엘리사의 말이 전능하신 여호와의 말씀을 대변하는 말씀임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말씀 자체가 능력임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문에 등장하는 이름 없는 백부장은 그의 집을 향해 오고 계시는 예수님에게 사환을 보내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내가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 하옵소서"라고 말했다. 그는 놀랍게도 예수님의 말씀이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 빛이 생긴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었다. 거센 풍랑으로 배가 거의 잠기게 된 상황에서 바다를 향하여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풍랑과 바다도 순종했던 그의 말씀의 능력을 믿었던 것이다. 그는 요한복음을 시작하는 첫 문장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1-3)는 말씀대로 예수님이 치명적인 중풍병에서도 낫게 하시는 창조주의 능력을 가진 분임을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가 가진 것과 같은 큰 믿음을 이스라엘에서 만나보지 못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나아만 장군은 그의 군복 속에 감추어진 그의 나병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대국의 최고사령관이라는 교만심을 가진 채 엘리사를 찾아왔다. 그러나 본문에 등장하는 로마인 백부장은 속국의 백성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권력자의 위상을 드러내는 로마군복을 입고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백부장이기 이전에 자신의 집에 예수님이 들어오시는 것조차 감당할 수 없다는 죄인으로서의 자신의 내면의 모습을 자각했다는 점에서 나아만과 대조를 이룬다.

  예수님 앞에 나아가려면, "거짓 자기(pseudo self)"와 "공적 자기(public self)," 또는 "페르소나"(persona)를 벗고 죄성을 가진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나아가야 한다. 그럴 때 진정한 치유와 회복과 구원이 일어난다. 

  10월 1일에 공식적으로 오픈하는 "이관직 상담실" 홈페이지에 홈페이지를 통해 상담받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서 나 자신을 소개하면서 약력난에 "전 총신대 신학대학원 부총장"이라는 약력 한 줄을 넣었다가 빼는 일이 있었다. 오래 맡은 보직도 아니고 7개월만 맡았던 그 보직을 약력으로 쓴 내 내면에 대해서 직면하는 아내의 충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출간한 저서 소개난을 두고도 아내는 빼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했다. 여러권의 책을 썼다는 것이 또다른 겉을 꾸미는 장식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 부분은 그냥 두기로 일단 결정했다. 부족한 책이지만 사장되는 책이 되기보다 몇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되는 책이 된다면 좋겠다는 나의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백부장의 내면적인 모습에 비추어볼 때 나는 나아만 장군의 모습을 더 닮아 있는 내 모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주여 이 죄인을 긍휼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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