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서비스(lip-service) 신앙생활의 위험성
- kleecounseling
- 11월 5일
- 1분 분량
2025년 11월 4일 새벽
본문: 마 15:1-20
제목: 립서비스(lip-service) 신앙생활의 위험성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찾아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십계명의 바운더리를 장로들의 관습이나 인본주의적인 가르침으로 "범"하고 있음을 드러내셨다. 그들은 "고르반"이라는 말을 하면 부모에게 주기로 한 선물이나 돈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제 5계명을 재해석했다. 그 동기는 이기심과 자기중심성 그리고 탐욕에 있었다. 부모를 제대로 공경하지 않는 자신들의 삶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율법을 비틀어 해석한 것이었다. 컨텍스트를 텍스트보다 더 중요시 여겼던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동성애자들을 옹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해서 해석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부모를 존경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도 존경하고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거리며 부모에게 약속한 것, 또는 재정적으로 도와야 할 것을 주지 않기 위한 구실과 변명을 만들기 위해서 그것이 하나님께 헌금할 것이라고 말하기만 해도 부모에게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잘못 가르친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컬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지 않을 것이면서도 하나님의 이름만 언급하는 것은 거짓이며 기만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행동을 했다. 식사할 때 손을 씻었느냐 안 씻었느냐와 같은 사소한 것에는 목숨을 걸고 강박적으로 지키면서 정작 중요한 것은 쉽게 무시하고 바운더리를 침범하는 그들의 삶의 모습은 모순적이었다. 그들의 겉은 사람들이 보기에 깨끗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 속에는 온갖 탐욕과 죄가 가득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이 모순적인 모습을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셔서 드러내셨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그들의 영성은 허위 영성이었고 외식이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본문에서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지칭했다.
인용된 이사야의 말씀의 환한 빛 앞에서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났을 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화가 났을 것이다. 제자들도 그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예수님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offended) 줄 아시나이까"라고 피드백한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반응을 개의치 않아 하시며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그냥 두라"라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라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이 대답은 하나님이 좋은 씨를 뿌린 하나님의 밭에 마귀가 밤새 몰래 와서 가라지씨를 덧뿌리고 가서 알곡과 가라지가 같이 자라는 천국비유와 연결된다. 즉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마귀와 연결된 가라지였던 것이다. 알곡처럼 "외식"하며 위장했고, 겉으로는 양가죽을 뒤집어쓰고 양처럼 행동했지만 그들의 실제 모습은 가라지였고 이리였다. 그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병식(病識, insight)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성격장애가 심한 사람이나 조현병을 앓는 사람이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스스로 지식인(知識人)이라고 생각하며 백성들을 가르치며 인도했지만 실상 그들은 영적 문맹인(文盲人)이었다. 그래서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가 하늘의 말씀을 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고 그분이 하늘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하신 말씀과 같은 정신으로 사도바울도 유대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길게 직면했다.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롬 2:17-23). 사도 바울의 말씀은 나에게도 좌우에 날선 검과 같이 예리하게 다가온다. 믿고 가르치는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모순성이 내 내면에도 있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자 캐런 호나이가 규명한 것처럼 심리적으로 미성숙할수록 내면에 모순성이 더 심해지며 갈등이 더 심해진다. 내 내면에도 이런 모순된 부분이 많이 있음을 인식하고 인정하며 조금이라도 치유되며 성숙해가길 원하며 바라며 기도한다.
오늘의 본문은 말씀을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목회자들에게 특히 도전한다. 성경을 묵상하고 깨달아 성도들에게 설교하며 가르치지만 정작 자신들은 삶에서 설교하며 가르치는대로 살아내지 못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변화하는 삶의 컨텍스트에 맞게 텍스트를 적당하게 재단하며 왜곡하기까지 해서 가르치는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은 특히 자각하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 자칫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처럼 영적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다가 그들과 함께 구덩이에 빠지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알곡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가라지였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는 이미 때가 늦다. 영원한 지옥불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가라지가 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깨어" 전신갑주를 제대로 입었는지 점검하며 살아가길 원한다.
예수님이 말씀에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과 입으로 나오는 것이 무엇인지 제자들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베드로가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고 말씀하시면서 의미를 설명해주셨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 즉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라고 명료하게 가르쳐주셨다. 마음에서 나오는 더러운 것을 예수님은 십계명과 연결하셨다. "살인, 간음과 음란, 도둑질, 거짓 증언과 비방." 개역개정판 성경에서는 악한 생각을 나머지 네 가지 계명과 독립적인 것으로 번역했는데 NIV 성경은 악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 크게 네가지 계명과 연결된 것으로 잘 번역했다.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을 이슈로 해서 예수님에게 힐문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예수님은 제 5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왜곡해서 해석하고 적용했던 그들의 악한 의도를 드러내셨다.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열번째 계명은 언급되지 않았다. 아무튼 인간과 관련된 다섯 가지 계명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경외심이 없이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쳤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모든 계명들을 마음으로 어기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과 속사람이 깨끗해지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성령님이 각 사람의 마음에 주인이 되어야 한다. 본성적으로 죄성을 가지고 있는 자아(ego)가 마음의 왕좌를 차지하면 죄성은 표출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준법과 도덕으로 외양을 치장하고 화장한다고 할지라도 속에 자아가 중심을 차지하고 있으면 모순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을 받을 때 비록 외양이 여전히 더럽게 보이고 설령 넘어지고 죄를 짓는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은 가라지가 아니라 알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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