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아들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 kleecounseling
- 2025년 12월 12일
- 1분 분량
2025년 12월 12일
본문: 마 22:41-46
제목: 다윗의 아들이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
오늘 본문에서는 흥미롭게도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이중구속적인 질문을 던졌다. 바리새인들이 되치기를 당한 셈이었다.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의 이중구속적인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그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대답으로 그들의 올무에서 벗어나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리새인들이 이중구속 상황에 빠진 것이다. 그들은 구약을 잘 알고 연구한 자들이었지만 예수님의 지혜를 당할 수가 없었다. 마태는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었다"고 기록했다(46절). KO패 당한 것이다. 마태는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라고 덧붙였다. 올무에 빠뜨리려고 질문해봐야 자신들만 올무에 빠져서 백성들 앞에서 수치를 당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먼저 던지셨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앞의 질문은 개방형 질문이라면 뒤의 질문은 예 아니오의 답변을 요구하는 폐쇄형 질문이었다. 그들은 개방형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고 폐쇄형 질문에 대해서만 짧게 대답했다. "다윗의 자손!" 그들은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온 군중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찬양했던 것을 그들을 알고 있었다. 예수님이 나사렛 출신이지만 다윗의 계보에서 태어난 자임을 소문을 통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야관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백성들의 관심과 인기가 예수님에게 향하는 것을 본 그들은 시기하며 질투했고 분노했기 때문에 그들의 눈이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라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비추어본다면 그들은 질투심과 분노와 탐욕으로 마음의 창이 완전히 더럽혀져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질문하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메시야)임을 알아보지 못했다.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하여 유다 백성에게 그들이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듣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였다.
예수님은 다윗이 자신의 자손에게 "주"(Lord)라고 불렀던 시편 110:1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바리새인들에게 다시 질문하셨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45절). 다윗의 아들(후손)이 자기의 조상 다윗을 향해 "주"라고 부른다면 말이 되지만 다윗이 자기의 후손(후배)를 향해 "주"라고 부른다면 어패(語弊)가 있는 말이 될 것이다. 예수님의 질문대로라면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윗의 자손!"이라고 대답한 바리새인들의 대답은 틀린 대답이 될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대답하지 못하고 물러나고 말았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인정하고 믿으면 대답은 간단해진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지만 다윗보다 크신 분이며 먼저 계셨던 분이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윗보다 크신 분이며 먼저 계셨던 분이다. 따라서 다윗은 예수님을 주라고 불렀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으니 바리새인들은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질문하셨을 때 베드로는 바리새인들이 하지 못했던 신앙고백을 했고 예수님은 그 고백이 하나님이 그로 하여금 할 수 있게 눈을 열어주신 것이라고 칭찬하셨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님은 법적으로는 마리아와 정혼한 다윗의 자손 요셉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아래에서" 오신 분이 아니었다. 그는 "위로부터" 오신 분이었다. 그는 다윗의 자손(the Son of David)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이셨다. 그는 아브라함의 자손(the Son of Abraham)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요한은 예수님이 자신의 정체성을 다음과 같이 밝히신 말씀을 기록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요 8:23).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랑스럽게 여기며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는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요 8:53)라고 질문하며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요 8:57)라고 질문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 8:58)라고 자신의 선재성(先在性)을 밝히셨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아들이 "천사보다 훨씬 뛰어나고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히 1:4)을 얻으신 분이라고 밝혔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존중했던 "모세"보다 크신 분이라고도 밝혔다.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히 3:3-6).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신성과 선재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잘 드러내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된 이시니라"(요일 1:1-2).
예수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질문이다. 예수님을 단지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자손으로만 이해한다면 예수님은 그냥 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소위 세상에서 말하는 성인(聖人)들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마태복음 1장 1절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 계보라"라고 시작하는 말씀은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천하만민이 네 씨(your seed)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신 언약을 성취하기 위하여 오신 분임을 유대인 크리스천들에게 확증하는 말씀이다. 그는 법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자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태어나셨지만 성령으로 처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어 탄생하심으로써 신성이 인성을 앞선 분이시다. 사도 요한도 그를 한 인간으로 알았지만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는 모습을 십자가 밑에서 목격하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자로서 오순절 성령 강림을 경험한 후에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계시의 눈이 완전히 열렸던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을 서두를 다음과 같은 놀라운 신앙고백을 하며 쓸 수 있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1-3).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의 열쇠가 없으면 성경이 해석이 되지 않는다.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이 믿음이 없다면 거짓 믿음이 된다. 사도 요한은 그래서 다음과 같은 경고의 말씀도 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 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1-3). 요한 생전에 있었던 이단적인 가르침은 가현설(假現說)이라고도 부르는데 육을 저급하게 여기는 헬라철학의 영향으로 예수님이 육체를 입고 오신 것을 부인하는 가르침이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자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몸을 입고 태어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믿어져야 성경의 모든 표적과 초자연적인 역사가 해석이 되며 예수님의 부활도 믿어진다.
나의 신앙여정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성자 하나님이시라는 사실과 그의 선재성에 대해서 의심했던 적이 있었다. 마치 예수님 당시의 고향사람들의 반응처럼 말이다.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마 13:54-57).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배척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예수님의 신성과 선재성을 확신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나의 생각과 머리로 이해하려고 했던 어리석은 시절이었다. 눈이 제대로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머리로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지 않으실 뿐더러 거짓을 미워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 말씀을 오류가 없는 말씀이라고 신뢰하고 "아멘"으로 받아들이면 예수님이 성자 하나님으로서 이 땅에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심이 "믿어지는" 은혜를 성령께서 주실 것이다. 바울이 에베소교회 교인들을 위하여 한 기도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 계속 해야 할 기도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7-19). 솔로몬은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을 힘입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약 천년 전에 예수님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산이 세워지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내가 그 곁에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잠 8:22-30).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예수님이 그리스도(메시야, 구원주)이심을 믿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면 2025년 성탄의 계절에 이 글이 촉매제가 되어 믿음이 생기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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