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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The end)

2025년 12월 18일 

본문: 마 24:3-14

제목: 끝(The end)


본문 3절은 감람산에 앉아 있는 예수님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이 모습은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이 산상보훈으로 말씀하시기 전에 갈릴리 지역에 있는 한 언덕에 올라가셔서 앉은 모습과 연결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 의미 있는 교훈을 하실 준비가 되신 것이다.


성전 건물들에 있는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2절)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포하는 말씀이었다. 이 말을 혹시라도 제자들이 아닌 백성들이 들었거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중에 한 명이라도 들었다면 예수님은 바로 반역죄로 고발당했을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만에 일으키리라"고 자신의 몸을 성전에 비유해서 말씀하셨다가 이 말씀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박게 고발의 근거로 잘못 사용되기도 했다(요 2:19-21 참조). 마치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루살렘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생활을 예언했을 때 거짓 선지자들이 그를 반역자로 몰았던 것처럼 말이다.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전하기를 마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그를 붙잡고 이르되 네가 반드시 죽어야 하리라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고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 성전이 실로 같이 되겠고 이 성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리라 하느냐 하며 그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에서 예레미야를 향하여 모여드니라"(렘 26:8-9).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충격을 받아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제자들도 예수님의 예언을 듣고 곧장 질문하지 못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감람산에서 제자들과 따로 있을 때 비로소 예수님께 "조용히"(privately) 질문했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3절). 마가는 제자들 중에서도 베드로, 안드레, 요한, 그리고 야고보가 따로 와서 질문한 것으로 기록했다. 제자들의 질문은 예수님이 종말에 대한 여러 말씀을 하시도록 하는 똑똑한 질문이었다. 


감람산 강화(講話)는 마태복음 24장 3절에서 시작해서 25장 46절에서 끝이 날 정도로 긴 분량을 차지한다. 총 95절이라는 긴 분량이다. 산상보훈이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 총 111절로 이루어진 것보다는 조금 짧지만 예수님은 긴 호흡으로 말씀을 하셨다는 점에서 산상보훈과 감람산 강화는 마태복음에서 앞과 뒤를 장식하는 말씀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 본문에는 "끝"(the end)라는 단어가 세 번 등장하는 것이 특징적이다.3절에서 제자들의 질문 중에 "세상 끝"(the end of the age)이라는 표현에서 한번 사용되고 예수님의 대답 중에서 "끝까지(to the end)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3절)에서, 그리고 "그제야 끝이 오리라"(then the end will com)(14절)에서 사용되었다. 3절과 14절이 세상의 끝을 의미한다면 13절은 개인적인 삶의 끝을 의미한다. 영화를 보면 스크린에 비친 화면의 맨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이 "the end"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끝이 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개인적인 삶에서도 출생하는 생일이 있고 죽는 기일(忌日)이 있다. 창세기 1장에서 시작된 만물의 시작이 있고 만물의 끝이 있다. 성경도 창세기에서 시작되어 요한계시록에서 끝이 난다. 특별계시로서의 성경은 요한계시록에서 끝이 났다는 교리가 "계시종결교리"이다. 더 이상 성경으로서 구원의 진리를 알게 하는 더 이상의 계시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교리이다. "성경의 충족성 교리"와도 연결된다. 이미 주어진 66권의 성경은 인간이 구원을 얻기에 충분한 복음의 진리를 충족하게 드러내었다고 교리이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끝이 있다. 죄로 말미암은 것이다. 끝은 죽음과 연결된다. 그런데 끝이 끝이 아니다. 영생과 영벌이 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헤롯왕이 중건한 화려한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질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의 끝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예수님이 통치하는 나라에서 누가 더 권력을 갖게 될 것인가에 대해 서로 논쟁하며 다투기도 했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눈에 보이는 화려한 성전도 무너진다면 세상 끝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세상 끝이 온다는 징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질문했다. 그때 예수님은 자신의 재림의 날, 즉 피조된 세상의 끝이 오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기 전에 일어날 징조에 대해서 여러 주제로 말씀하셨다. 이 교훈을 통하여 예수님은 21세기에서 살고 있는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가르침과 위로와 소망을 주신다(롬 15:4절 참조). 오늘 본문에 나타난 세상 끝이 오기 전에 징조를 보면 우리의 마음은 무거워지고 두려움이 생기기조차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징조들도 "끝"이 있으며 개인적으로 겪을 수도 있는 여러 고난과 슬픔과 고통도 "끝"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약속하셨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3절). "내가 세상 끝날까지(to the very end of the age)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세상의 끝의 징조들은 세상 끝에 영적으로 잠자는 자들이 깨어나도록 촉구하는 하나님의 나팔 소리의 서곡(序曲)이다. 바울은 세상 끝날 일어날 전세계적인 부활 사건을 염두에 두고 세 가지 큰 소리를 언급했다. "주께서 호령(a loud command)과 천사장의 소리(the voice of the archangel)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the trumpet call of God)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에서 열 처녀 비유로 천국을 설명하시면서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5-6절)라는 말씀으로 세상 끝에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조차 영적으로 자며 졸고 있을 위험성을 경고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개인적인 종말의 순간이 갑자기, 예기치 않게, 눈깜짝할 순간에 찾아올 때 신랑되신 예수님을 맞을 수 있는 영적 준비가 되어 있는지 점검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주적인 종말, 즉 세상 끝이 갑자기, 예기치 않게, 눈깜짝할 순간에 찾아올 것이라고 성경은 미리 예고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in a flash, in the twinkling of an eye)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고전 15:51-52).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세상 끝의 징조(the sign)을 몇 가지로 알려주셨다. 첫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 처방전을 주셨다. "주의하라"(Watch out)는 것이다. 23-27절에서 마태는 그들을 믿어서는 안된다고 구체적인 처방까지 주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했다. "그 때에 사람이(anyone)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2천년 기독교 역사에 마귀에게 속한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과 이단교주들이 많이 있었다. 대한민국에만 해도 마귀에서 속한 이단들이 많이 있다. 자칭 재림예수라고 떠들며 미혹하는 자들이 있으며 안타깝게도 그들을 추종하는 자들이 있다. 이미 예수님이 재림했다고 가르치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속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의 재림은 전 세계적으로 모든 자들이 동시에 볼 수 있게 일어날 것이며 재림의 날에는 모든 죽은 자들이 부활하는 대역사(大役事)가 일어날 것이다. 아직은 그 끝은 오지 않았다. 확실하게 세상 끝은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올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거짓이 전혀 없다. 믿지 않고 "설마" 하는 자들은 노아의 홍수의 날에 멸망했던 자들처럼 후회해도 소용이 없게 될 것이다.


둘째, 예수님은 끝의 징조를 산통에 비유하셨다[8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All these are the beginning of birth pains)]." 주후 2천년 역사에 세상 끝의 징조와 같은 전쟁과 기근과 환난은 계속 있어 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증상이 있어도 그러려니 하고 넘긴다. 그러나 신약에서 세상 끝은 "유예된" 것이다. 언제든지 심판은 내려질 수 있지만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으로 기간이 연장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릴 때 울음을 그치라고 하거나 약간은 위협할 때 부모님이 열까지 세신 기억이 난다. "아홉, 아홉 반, 아홉 반에 반…." 종말의 타이머는 계속 작동되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만 그 때를 아신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는데 아버지 하나님의 때는 갑작스럽게 올 것이다. 


셋째, 세상 끝의 징조는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다(9절).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을 실감할 것이다. 유대인들은 2천년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고난을 받아왔고 20세기에는 히틀러 정권에 의해서 정말 지옥같은 경험을 해야 했다. 거주지를 박탈당하고 인종말살 정책에 의하여 개스실에서 수백만명이 죽어가는 참상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기독교신앙으로 인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곳들이 있다. 특히 이슬람 국가들에서 회심하는 것은 가족들로부터도 버림을 받고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는 오늘날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에게도 이 신앙의 자유가 빼앗기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하여 고난을 당해야 할 날이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 한국도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넷째, 불법과 악은 증가할 것이지만 사랑은 감소하며 식어질 것이다(12절).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10절). 실제로 이런 일은 20세기에 북한에서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한때 아시아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웠던 평양이 김일성과 김정일을 우상화하는 종교도시로 변모했고 기독교의 가르침을 모두 정치화해서 북한 체제 자체가 거짓 종교가 되어서 운영이 되고 있다. 5호담당제와 같은 제도를 통해 가족끼리도 서로 불신하게 하고 고발하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상호비판하는 식의 비인간적인 처사가 행해졌고 지금도 행해지고 있다. 두려운 일이다. 이런 일이 대한민국에서도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믿는 자들은 끝까지 견뎌야 할 것이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고난과 불법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에스더의 신앙과 같은 신앙 맷집을 키우도록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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