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삶
- kleecounseling
- 2025년 12월 22일
- 1분 분량
2025년 12월 22일
본문: 마 25:1-13
제목: 깨어 있는 삶
"신랑되신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등불 들고 맞이할 준비 됐느냐
그날 밤 그날 밤에 등불들고 주 맞을 준비 됐느냐
예비하고 예비하라 우리 신랑 예수 오실 때
밝은 등불 손에 들고 기쁨으로 주를 맞겠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자주 부르는 찬송가의 1절 가사이다.
25장에서 천국 비유가 세 개의 비유로 이어진다. 첫째가 소위 열 처녀 비유이고 둘째가 달란트 비유, 셋째가 양과 염소의 비유이다. 열 처녀 비유는 마태복음에만 등장한다. 예수님은 24장에서 하신 말씀과 연결하여 열처녀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24:36-37).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어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48-51절). 오늘 본문의 마지막 절에서 예수님은 이 비유의 주제를 밝히 드러내셨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13절).
오늘 본문에서 신부측의 들러리로서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들은 모두 신랑이 오기를 기다린 자들이었다. 그들은 신랑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모두 신랑을 기다렸다. 문제는 신랑이 예상했던 시간보다 더디 왔다는데 있다. 밤이 깊어지자 기다리던 모든 열처녀는 졸며 잤다. 예수님은 다섯 처녀는 지혜롭고 다섯 처녀는 어리석은 자였다고 말씀하셨다. 지혜롭고 어리석음의 차이는 여분의 기름을 준비했느냐 준비하지 않았느냐에 있었다. 예상 시간보다 늦어짐으로 등에 남아 있는 기름이 거의 떨어진 시점에 신랑이 왔다는 점에 문제가 생겼다. 신랑과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은 들고 있는 등에 불빛을 밝힐 수 있는 기름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기름을 준비했던 다섯 처녀는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신랑측 들러리가 외치는 소리, 즉 재림의 날에 천사장의 트럼펫 소리(the trumpet call)를 들었을 때 잠에서 깨어나 기름을 채워 등을 밝히고 신랑과 함께 가는 무리에 합류하여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오늘 비유에는 두 번의 거절이 있다. 첫번째는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들이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들의 청을 거절한 것이다. 그들은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달라"는 거절을 매정하게 거절한다.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겉옷을 달라 하면 속옷까지 주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이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매우 이기적인 것처럼 보일 만큼 기름을 준비한 다섯처녀는 "No"라고 거절한다. 예수님이 이 비유에서 말씀하시고자 한 것은 윤리적인 행동 여부가 아니다. 마지막 종말의 날은 철저한 구별짓기가 된다는 것을 경고하시는데 이 비유의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비유는 24장에서 언급되었던 말씀의 연장선에 있는 비유이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움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40-41절). 기름을 준비한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데러감을 당하는 남자와 여자이다. 반면에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해 등불이 꺼져가는 등을 가진 미련한 다섯 처녀는 버려둠을 당하는 남자와 여자이다.
두번째 거절은 신랑과 기름을 준비했던 다섯 처녀가 혼인잔치에 들어간 후에 문은 닫히고 다시 열리지 않았다는 의미에서의 거절이다. 미련한 다섯 처녀가 기름을 파는 자에게 가서 기름을 샀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밤중에 기름을 파는 자에게 기름을 사는 것도 어려웠을 것이다. 이미 기름파는 가게 문을 닫았을 수도 있다. 아무튼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설령 기름을 사서 늦게 왔다고 할지라도 더 이상 혼인잔치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혼인잔치 집 문이 닫힌 후에 와서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신랑은 매정하게 대답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의 하나님의 심판대는 자비와 긍휼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 자리이다. "No"면 "No"이다. 달란트 비유에서도 한 달란트 받은 종에게는 더 이상 자비와 긍휼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30절).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도 왕의 심판대 왼쪽에 서 있는 염소로 표상되는 무리에게는 더 이상 자비와 긍휼이 주어지지 않는다.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이 들어가라"(41절). 노아의 홍수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노아의 가족들이 방주에 들어가자 하나님이 방주의 문을 닫으셨고 노아의 가족들 외에는 그 누구도 방주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준다.
예수님은 흥미롭게도 비유의 마지막에서 "그런즉 기름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런즉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비유에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도 미련한 다섯 처녀들과 함께 졸며 잠을 잤다. 졸며 잔 것은 분명히 잘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기름을 준비하고 있었다. 구약의 성전에는 일곱 촛대에 불이 항상 켜져 있었다. 제사장들은 이 불이 꺼지지 않도록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기름을 채워야 했다. 신약의 크리스천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우리 각자의 삶에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는 삶을 살도록 영적으로 깨어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 날과 그 시는 알 수 없지만 언제든지 "신랑이로다 나와 맞으라"라고 할 때 불이 꺼지지 않은 성도들은 모두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는 은총을 입게 될 것이다. 믿는 자들로서 경고의 나팔이 울리는데도 자칫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진 상태에서 깨어나지도 못하고 예수님을 맞는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세상적인 술에 취한 상태로 예수님을 맞이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인가? 자문하며 우리의 옷매무새를 여미며 매일의 삶을 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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