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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 배척받으신 예수님

2025년 10월 30일 새벽 

본문: 마 13:53-58

제목: 고향에서 배척을 받으신 예수님 


오늘 본문은 마가복음에도 기록되어 있다. 누가복음에는 비슷한 상황이지만 많은 부분에서 내용이 다르게 기술되어 있다. 따라서 고향에서 배척받은 것이 적어도 두 번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누가는 예수님이 마귀에서 시험을 받은 후에 갈릴리 지역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셨을 때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셨다는 짧은 두 절을 기록한 후에 곧장 예수님이 고향 사람들에게 처음 배척당하신 사건을 기록했다. 마태가 유대인 크리스천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마태복음을 기록한 반면 누가는 이방인 크리스천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누가복음을 기록했다. 그런 점에서 누가는 그의 복음서 초반부에 의도적으로 복음과 예수님이 자기 백성에게서 환영받지 못하고 이방 백성들에게 환영받을 것임을 고향사람들의 배척 사건을 통해서 암시했다고 볼 수 있다. 


누가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는 유명한 말씀을 하신 후에 엘리야 시대와 엘리사 시대에 행해진 기적 사건을 언급하셨다. 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들이 있었지만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이방 땅 시돈의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보냄을 받았으며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 환자가 있었지만 원수 나라 시리아(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 혼자만 나병에서 깨끗함을 얻었다고 말씀하셨다. 회당에 모였던 고향 사람들은 그 말씀을 듣고 격노했다. 그들은 앉아서 듣다가 모두 일어나 예수님을 동네 밖으로 내쫓았고 동네가 위치했던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려 죽이려고 했다(눅 4:28-29). 고향 사람들의 이와 같은 반응은 약 삼년 후에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공모하고 앞장 서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한 반응과 매우 닮았다. 


만약 마태복음에 기록된 오늘 본문의 사건이 누가가 기록한 배척 사건과 다른 배척 사건이었다면 예수님은 심각한 트라우마를 입힐 수도 있는 배척 사건을 겪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고향 사람들에게 다시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여 기적을 행하신 것이다. 오늘 본문과 평행절인 마가복음 6장 5-6절에서 마가는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He was amazed at their lack of faith)"라고 기록했다. 마가는 이어지는 6장 7절부터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각 마을로 파송하신 사건을 기록했는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막 6:11)라고 강하게 말씀하셨다. 이 말씀대로라면 예수님도 자신을 배척한 고향 사람들에게 발에 먼지를 떨어버릴 정도로 다시는 찾아가지 않으실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셨던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고향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을 듣고 보고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라고 놀라며 반응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고향에서 자라난 한 인간으로만 이해했다(From Below Approach). 그들은 예수님의 가족들의 이름까지 잘 알고 있었다. 목수의 아들, 마리아의 아들, 야고보와 요셉과 시몬과 유다의 형, 여동생들의 오빠 이상으로 해석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반응은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늘 같이 생활해왔던 한 청년이 기적을 베풀고 탁월한 지혜로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쳤을 때 해석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귀신에 들린 것도 아니고 정신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자신들과 확실하게 구별짓기가 되는 모습을 보였을 때 그들은 해석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태와 마가와 누가는 모두 그들이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기록했다.


고향 사람들이 배척한 반응을 천국 비유와 연결짓기 해볼 수 있다. 그들은 길가와 같이 전혀 수용력이 없는 땅과 같았다. 그들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했다."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과 의인들이 보고자 했고 듣고자 했던 것을 그들은 보고 듣는 특권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특권을 누리지 못했다. 마치 유대인들에게 먼저 찾아오신 예수님의 복음이 유대인들에게 특권으로 수용되지 못하고 배척됨으로써 이방인들에게 빼앗기게 된 것과 같다. 바울은 이 사실을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참감람나무와 돌감람나무에 비유하여 설명하였다..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음으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롬 11:20).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롬 11:24). 요한도 이 사실을 잘 설명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9-13). 그렇다!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것은 그의 말씀의 능력과 기적을 행하시는 능력이 "아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From Above) 온 것임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을 성인으로만 이해하는 사람은 예수님이 자신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로부터" 이 땅에 오신 메시야,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성자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할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배척하는 것이다. 길가와 같은 땅에서 옥토와 같은 땅으로 변화되어야 복음의 씨가 발아하며 자라나며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끝까지 복음을 배척하는 사람들은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마 13:42)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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