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한 알 비유
- kleecounseling
- 10월 27일
- 1분 분량
2025년 10월 26일 주일 새벽
본문: 마 13:31-32
제목: 겨자씨 한 알 비유
마태는 13장에서 "밭"과 "씨"를 사용하여 천국을 묘사한 예수님의 비유를 세 개 소개하였다. 첫번째 비유는 씨가 뿌려진 "네 부류 밭"에 초점이 있고, 두번째 비유는 주인의 밭에 뿌려진 주인이 뿌린 "좋은 씨"와 몰래 원수가 뿌리고 간 "가라지 씨"에 초점이 있다. 이 두 비유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직접 그 의미를 해석해주셨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비유는 어떤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에 초점을 맞춘다. 첫번째 비유에서 예수님은 "어떤 농부"가 "자기 씨들"을 뿌리며 흩었다(sowed and scattered)고 표현하셨다. 이 모습은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복음이 누구에게나 전파되는 "일반적 부르심"(common/general call)을 의미한다. 두번째 비유에서는 밭의 주인이 직접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렸다. 예수님이 직접 해석해주신대로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 즉 예수님이시다.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다 (13:37, 38).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다(13:39). 세번째 비유에서는 어떤 사람이 자기 밭에(in his field) 곡식 씨가 아닌 겨자씨 한 알을 "취하여"(took) 뿌리지 않고 "심었다"(planted). 같은 내용을 기록한 누가복음에서는 "채소밭"(his garden)이라고 표현했다. 여러 알이 아니고 "한 알"이라는 점도 특징적이다. 그리고 이 겨자씨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지만 정원에서 가장 큰 식물이 되어 나무가 되었다고 마태는 기록했다. 이 모습은 이어지는 누룩비유에서 적은 양의 누룩이지만 영향을 주어 밀가루 27kg에 해당하는 양의 반죽덩이를 크게 부풀게 하는 것과 연결된다. 흥미로운 것은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는 예수님이 따로 해석해주지 않으셨다는 점이다. 제자들이 쉽게 이해해서 묻지 않아서였을까?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겨자씨 비유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고 죽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하신 예수님의 또다른 비유와 연결되어 나에게 해석되어졌다. 밭이든 정원이든 아니면 채소밭이든 관계없이 자기 땅의 주인이 의도성을 가지고 가장 작은 씨라고 말할 수 있는 겨자씨 "한 알"만 취하여 땅에 "심었다"는 점이 의미있다. 나지 않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여러 알의 겨자씨를 심지 않았다. 오직 한 알의 겨자씨만 심었다. "뿌리지" 않고 "심었다."
미국 칼빈신학교 동문 선배이자 백석대학교에서 함께 교수 사역했던 구약학자 류호준 교수님이 자신의 책에선가 화란에서 유학하던 시절 초등학교 1-2학년 정도되었던 자신의 어린 아들이 학교 친구가 죽어 장례식에 참석하고 와서 "아빠, 오늘 나 친구 땅에 '심고' 왔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그 말 속에서 부활의 의미가 와닿았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튜울립 알을 가을에 땅에 심으면 봄에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튜울립이 피어나는 화란의 환경에서 그 아이는 땅에 묻은 친구의 시체를 마치 튜울립 알을 땅에 심는 것과 같은 행위로 이해했는지도 모른다. 마태가 의도적으로 사용한 동사 "take, plant"는 신학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땅에 심겨진 겨자씨 한 알은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상징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이 겨자씨가 발아하고 자라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아의 과정을 거쳐 어린 아기로 출생하며 헤롯 왕의 위협과 같은 위협 속에서도 "생명싸개" 속에 보호하셔서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땅에 묻히시고 부활하심으로써 큰 나무가 되게 하셨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일 수 있는 안식처와 구원의 방주가 되게 하셨다. 그를 좇았던 열두 명의 제자들이 또 다른 겨자씨가 되어 순교함으로써 큰 겨자나무들이 되어 구원의 숲을 이루었다. 에스겔은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점점 많아지며 헤엄치지 않고서는 건널 수 없는 강이 되고 그 강 주변에는 사시사철 생명을 얻게 하는 과실들이 맺히는 환상을 보았다. 이 환상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
겨자씨는 다른 말씀에서도 사용되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어도 이 산더러 명하여 바다에 옮기우라고 해도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작은 믿음이라도 생명이 있으면 큰 변화를 가져오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키어 곧 주위 사람들 그 불에 몸 녹이듯이 주님의 사랑 이같이 한번 경험하면 그의 사랑 모두에게 전하고 싶으리....친구여 당신께 이 기쁨 전하고 싶소 내 주는 당신의 의지할 구세주라오 산위에 올라가서 세상에 외치리 내게 임한 주의 사랑 전하기 원하네"라는 찬양 가사가 오늘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기억나서 옮겨본다. 겨자씨 한 알되신 예수님이 땅 속에 묻혀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온 세상을 아우르는 큰 나무가 되셨다. 누구든지 그 나무에 깃들이는 자는 구원을 얻고 생명을 얻는다는 진리를 오늘 비유는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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