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 kleecounseling
- 2025년 12월 9일
- 1분 분량
2025년 12월 9일
본문: 마 22:15-22
제목: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오늘 본문은 마태와 마가와 누가 모두가 기록했다. 오늘 본문에서는 바리새인들이 주축이 되어 헤롯 당원들과 결탁이 일어난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을 죽이려는 세력의 전선이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헤롯왕의 정치철학을 추종하며 권력을 지향하는 헤롯 당원들과 바리새인들의 제자들 중에서 일부를 스파이로 예수님께 보내어 예수님의 말씀에서 올무를 놓아 곤경에 빠뜨리고자 한 것이다. 누가는 이들이 예수님께 왔을 때 진지하고 순수한 것처럼 위장하고 온 스파이였다고 기록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속내를 숨기기 위해 예수님에게 입에 발린 칭찬을 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며(you are a man of integrity)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16절). 그들의 말은 다 맞는 말이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칭찬이나 거절에 흔들리는 분이 아니셨다. 예수님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이 없는 분이셨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집에도 초청을 받아 식사하러 가셨고 죄인들로 간주되었던 세리나 창녀들과도 식사를 함께 하셨다. 권력을 가진 자들 앞에서 전혀 주눅들지 않으셨다. 그들의 인정을 받고자 하신 적도 없었다. 그들도 자신들과 구별된 예수님의 모습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고 립서비스였지만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양의 가죽을 뒤집어쓴 이리와 같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악한 의도를 가지고 예수님을 올무에 빠뜨리고자 립서비스를 한 것이다. 그들의 말은 솔로몬이 잠언에서 경고했던 음녀의 입술에서 나온 말이었다.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의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 같이 날카로우며 그의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의 걸음을 스올로 나아가나니"(잠 5:3-5).
그들은 진지한 척 하면서 예수님에게 이중구속적인 질문을 마침내 던진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누가는 이 질문에 하나를 덧붙였다.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예 아니오의 답변을 요구한 것이다. 문제는 예라고 대답해도 예수님은 올무에 빠지게 되고 아니오라고 대답해도 올무에 빠지게 된다는데 있었다. 이중적으로 구속(binding)하는 질문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모의를 해서 옴싹달싹할 수 없는 질문지를 만들어내어서 온 것이었다. 그들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이번에는 빠져나갈 수 없을거야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사람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은 그들의 악한 의도를 아셨다. 그리고 그들의 정체를 노출시키셨다. 빛이 되신 그분이 어둠의 세력에 있는 그들의 정체를 드러내신 것이다. "너희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Why are you trying to trap me?)"라고 그들을 직면하셨다. 그들은 순간적으로 두려움과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다. 그 자리를 빨리 모면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자리에는 예수님의 제자들뿐 아니라 백성들도 있었을 것이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예수님을 올무에 빠뜨리려다가 자신들의 악함만 노출되는 상황에서 수치스러웠을 것이다. 최소한의 양심이 기능했다면 말이다.
예수님은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접근을 하셨다.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라고 말씀하시고 한 데나리온(노동자 하루치 품삯에 해당하는 은화)를 가져왔을 때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고 질문하셨다. 그들은 별 생각없이 "가이사의 것이니이다"라고 답변했다. 예수님은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 또는 "바치리이까 바치지 말리이까"라고 묻는 윤리적이며 종교적인 틀을 벗어나는 대답을 하셨다.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지혜로운 답변을 하셨다. 그들의 악한 궤계는 예수님의 지혜를 당해낼 수 없었다.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라고 대답하심으로써 그들의 이중구속적인 올무를 쉽게 벗어나셨다. 이 대답은 종종 정교분리의 가르침으로 오용되어왔다. 종교는 정치에 관여하면 안된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오용하는 것이다. 정치가 종교에 관여하지 않고 개인의 신앙을 보호하도록 하기 위하여 세워진 것이 정교분리의 원칙이었다. 가이사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권력이며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이며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현대 국가에서 모든 국가를 기독교 국가로 만드는 것은 성경의 정신도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국가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와 기독교는 국가의 권위에 대해서 존중하며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이 낸 권세로 인정을 하는 것이 성경적이다. 그러나 국가가 잘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나 기독교인이 침묵하는 것은 성경적인 정신이 아니다.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정교분리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다. 바리새인들처럼 헤롯당과 결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정당을 떠나서 정치가 바른 정치의 길에서 많이 벗어날 때에는 설교를 통해서, 또는 개인적인 신앙양심에 따라 목소리를 내는 것이 성경적이며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다. 한국상황이나 미국상황이나 어려운 상황에 있다. 교회와 성도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점점 그 힘을 잃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오늘 본문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이분법적인 틀을 벗어나서 총체적인 관점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며 기도하며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책임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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