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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나무와 엉겅퀴 vs.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2025년 9월 14일 주일 밤 

산상보훈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되는 마태복음 7장 15절부터 23절까지 본문은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제자들의 특징을 규명한다. 거짓 선지자들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열매"(fruit)에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By their fruit you will recognize them)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거짓 선지자인지 아닌지를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외양이 아니다. "양의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 내면의 진짜 모습은 게걸스럽게 먹이를 찾는 "이리"가 거짓 선지자들의 모습이다. 요한복음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목자"가 아니라 "삯꾼"이다. 에스겔 선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은 마땅히 먹이고 돌보아야 할 양떼를 먹이지 않는 자들이다. 그들의 관심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는" 데 있다(겔 34:3). 그들은 연약한 양들을 강하게 하지 않는다. 병든 양들을 치료하지 않는다. 부상 당한 양들을 싸매어주지 않는다. 방황하거나 잃어버린 양들을 찾지 않는다. 대신 폭력적으로 양들을 대하며 위협한다. 양들을 개스라이팅 시킨다. 에스겔의 지적은 북이스라엘의 불신앙적인 왕들과 거짓 선지자들과 정통성이 없는 거짓 제사장들을 향한 것이었다.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종교(정치) 지도자들은 가시나무와 엉겅퀴였다. 가까이 가면 찔리고 상처입기 마련이다. 치유적인 대상, 좋은 대상이 아니라 상처와 트라우마를 입히고도 양심의 가책이나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자들이다. 하나님 앞에서도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침없이 예언한다. 거짓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거짓말하는 줄조차 모른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좋은 나무가 아니다. 즉 선하신 하나님과 연결짓기가 되지 않은 자들이다. 겉으로 경건의 모양만 갖춘 것처럼 행세하지만 사실은 경건의 능력이 없으며 그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딤후 3:5 참조). 바울은 이런 자들을 경계하였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딤후 3:13). 아이러니한 것은 말세의 사람들은 거짓 선지자들의 팔로워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 4:3-4). "감언이설(甘言利說)"이 특징적인 이런 거짓 선지자들이 말세가 될수록 더 많아질 것이라고 종말에 대한 가르침을 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직접 경고하셨다. "그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서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10-12). 

  유다왕국의 마지막 선지자였던 예레미야가 활동했던 시기에도 거짓 선지자들이 성행하였다. "그들은 가장 작은 자부터 큰 자까지 다 욕심내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들이 달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렘 8:10-11). 그들은 거짓으로 백성들에게 예언했고 회복불능 상태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괜찮은 상태에 있다고 말하며 "평강"을 외쳤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그들의 실체를 알려주셨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령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점술과 헛된 것과 자기 마음의 거짓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는도다"(렘 14:14). 대표적인 경우가 거짓 선지자 하나냐였다. 그는 유다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될 것을 예언하며 목에 멍에를 메고 있던 예레미야를 대적하여 그의 목에서 멍에를 빼앗아 부수는 퍼포먼스를 하면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년 안에 모든 민족의 목에서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와 같이 꺾어버리리라 하셨느니라"(렘 28:11)라고 전혀 두려움 없이 예언했다. 그때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에게 전했고 그 말씀대로 그는 몇 달이 되지 않아 죽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너를 지면에서 제하리니 네가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음이라 네가 금년에 죽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니 선지자 하나냐가 그 해 일곱째 달에 죽었더라"(렘 28:16-17).

  예수님은 가시나무와 엉겅퀴와 대조적으로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메타포로 사용하셨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을 사용하는 비유로 구약에서도 많이 사용되었다. 이사야는 언약 백성으로 부름받은 이스라엘 백성을 "극상품 포도나무"에 비유했다(사 5:2). 극상품 포도나무에서는 극상품 포도가 맺히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그러나 놀랍게도 들포도가 맺혔다고 이사야는 고발하였다. 들포도가 맺힌 포도원을 하나님이 뒤엎으실 것이며 그 포도원에 "찔레와 가시"(briers and thorns)가 날 것이라고 예언했다(사 5:6). 예수님의 말씀처럼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다(마 7:18). 그리고 나쁜 열매를 맺는 가시와 엉겅퀴는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마 7:19)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예수님으로부터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는 심판의 메세지를 듣게 될 것이다(마 7:23). 

  가시나무와 엉겅퀴의 메타포는 사사시대에 불법으로 스스로 왕이 되고 기드온의 아들들을 잔혹하게 죽이고 백성들을 폭력적으로 다스렸던 아비멜렉을 향하여 기드온의 아들 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요담이 사용한 메타포이기도 했다. 나무들 중에서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는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고 겸손하게 왕이 되는 것을 사양하는데 반해 가시나무는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라고 위협했다고 요담은 아비멜렉을 빗대어 지적했다. 실제로 그는 그에게 반역한 백성들이 세겜 망대에 피신했을 때 밑에 불을 놓아 약 천 명의 생명을 죽이고 다른 망대에 피신한 백성들에게도 불을 놓아 죽이려다가 한 여인이 던진 맷돌짝에 두개골이 깨져 죽는 비참한 종말을 당하고 만다. 사사기 기자는 하나님이 그의 악행에 대해서 갚으셨다고 기록했다(삿 9:56). 

  거짓 선지자들은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도 기독교의 이름을 빙자한 많은 이단들의 교주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리더들은 거짓 선지자들이다. 겉으로는 성경을 인용하며 "양의 옷"을 입고 있지만 속으로는 영혼을 "약탈하는 이리"이다. 그들은 삼위 하나님과 연결된 자가 아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내며 기적을 행한다고 할지라도 분별해야 한다. 어리석게 팔로워가 되거나 추종자가 되면 안 된다. 그들은 거짓의 아비 마귀와 연결된 자들이다. 사도 요한은 그들의 종말을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다.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저짓말 하는 모든 자들(all liars)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을 둘째 사망이라"(계 21:8). 영적 분별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인식하고 특히 나와 같은 목사들은 자신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짓 선지자의 반열에 서 있지 않는지 각성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자신만 아니라 자신을 믿고 따른 자들을 미혹하는 리더가 되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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