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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ok but you're not ok

2025년 9월 12일 아침

마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듣기에 따라 오용될 수 있는 말씀을 하신다. "비판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또한 비판받게 될 것이다." 나도 언젠가 남에게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남을 손가락질 하지 말라는 의미인가? 뒤에 등장하는 상대방의 눈에 있는 티와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의 이미지가 이 가르침의 의미를 명료화한다.

  비판하는 사람의 심리는 어떤 것일까? 아마도 현실요법에서 말하는 표현으로 말하자면 "I am OK but you’re not OK"의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인간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가 매우 어렵다는데 있다. 들보와 티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크기가 차이가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자신의 눈에 들보와 같이 큰 것이 있으면 불편해서 인식이 되어야 하는데 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방어기제가 무의식적으로 작동해서 부인(denial)하고 합리화(rationalization) 하기 때문이다. 들보가 없다고 여기거나 들보가 있어도 그런 들보는 누구나 다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를 깨닫지 못하고 상대방의 눈에 있는 티가 보이며 거슬리는 이유를 잘 설명하는 방어기제가 투사(projection)이다. 영사기(projector)를 비유로 들면 이해하기가 쉽다. 영화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는 영상은 사실상 스크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사기에서 돌아가는 필름에 빛을 투과시켜 스크린에 상이 맺히게 한 것이다. 상대방의 눈에 있는 티가 거슬린다는 것은 사실상 자신의 눈에 들보와 같은 이슈가 있기 때문이다. 방어기제는 자신의 문제임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만약 자신의 눈에 들보가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충격을 받을 것이며 고통을 느낄 것이며 심지어 무력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방어기제가 꼭 필요하다. 어른들도 때로는 방어기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방어기제를 자주 사용하면 성장과 변화에 걸림돌이 되어 미성숙한 삶에 고착되어 살게 된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사용한 대표적인 방어기제는 투사였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행동에서 꼬투리를 잡아 공격하려고 사소한 것까지 문제시했다.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행동을 지적했고, 안식일에 제자들이 시장해서 밀밭을 지나가면서 밀을 훑어서 먹는 행동이 안식일을 범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고 지적했다. 38년된 병자를 예수님이 고쳐주셨을 때 그가 나아서 자기가 누워있던 매트를 들고 걸어가는 것을 보고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요 5:10)라고 지적질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완벽주의와 강박적인 생각과 행동이 율법 앞에서 자신의 의로운 모습이라고 착각했다. 실상은 그들의 마음에는 시기심와 질투심과 분노와 탐욕이 가득 차 있었다. 

  중심을 보시는 예수님은 그들의 내면을 직면하여 노출시키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마 23:27-28). 그들의 외면와 내면은 매우 모순적이었다. 그럼에도 이 모순을 인식하지 못했다. 바리새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미성숙한 성격장애자들도 그럴 때가 많다. 작고한 미국의 유명한 정신분석학자인 캐런 호나이(Karen Horney)는 신경증(neurosis, 심리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을 총칭하는 표현)을 가진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징 중의 하나가 내면세계에서 심하면 180도 다른 모습이 있으며 그런 모습이 행동으로 표출되어도 자각하지 못한다고 통찰력있게 지적한 바 있다. 이런 극단적인 모순성 때문에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같은 극단적인 모습까지 갖게 되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죄성을 가진 인간은 부분적으로라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특성을 갖고 있다. 나에게도 있음을 인정한다. 인식하고 인정을 해야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려는 마음을 추스릴 수 있다. 흔히 하는 표현으로 손가락질 할 때 사용하는 손가락을 제외하고 적어도 세 개의 손가락은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말은 무조건 비판하거나 정죄하거나 판정하거나 판결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오용되어서는 곤란하다. 한면을 강조한답시고 다른 한면을 무시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하나님은 판결하시는 의로운 재판장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검사들과 판사들과 변호사들을 통하여 사법 시스템이 공의롭게 작동되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마음 안에도 검사와 판사와 변호사가 작동하고 있다. 지나치게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문제가 있다. 소위 초자아(superego)가 지나치게 민감한 사람들이다. 신경증적인 양심의 발달로 인하여 지나치게 괴로워하며 갈등하는 사람들이다. 좀더 둔감해질 필요가 있다. 행동주의에서 사용하는 "체계적 둔감법"(systematic desensitization) 과 같은 접근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이런 사람들에게는 복음의 진리가 주는 자유가 필요하다. 반대로 자신에게는 지나치게 관대하며 자신의 문제점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성격장애자들도 있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자가 대표적이다. 병식(病識)이 없거나 있어도 매우 약해서 변화와 치유의 필요성마저 인정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는 이들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내면을 점검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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